[시애틀 수필-공순해] 사고사
- 02:51:26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사고사
막 모퉁이를 돌아서다 발이 멈칫했다. 발길 아래 놓인 압축된 물체, 그게 과거 하나의 생명이었다는 건 찰나에 식별됐다. 순간 나가던 발이 허공에서 맴돌며 몸이 균형을 잃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껑충 솟구쳐 균형을 잡았다.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그 후 거기를 지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생명이었다 사물화한 것. 사물이건 기억이건 어떤 형태로든 경험은 몸에 흔적이 되어 자신의 일부가 된다. 털어내기 힘든 일부가 될 경우도 있다. 한데 좀 더 생각해 보니 식물이 으깨진 걸 보면서도 이런 통증을 느꼈던가. 그 정도가 낮았던 까닭은 뭘까. 체감의 차이일까.
작년 올 이어 당한 사고에 대한 기억이 길모퉁이에 달라붙어 있는 그것처럼 떨어지지 않는 까닭도 체감 탓 아닐지. 그냥 사고사(事故死) 처리하자. 자꾸 일어서는 통증을 억눌러 본다.
알고 지내는 문협에서 청탁이 왔다. 글을 보내고, 책 발매 뒤 받아본 결과는 참사(慘死)였다. 글 앞부분, 즉 글의 반이 뚝 잘려 있었다. 연락했더니 그 회장은 출판사를 힐난했다. 교정책임은 그가 아니고 출판사에만 있다는 뜻일까. 그는 나를 위해 책 세 권을 다시 만들어 보내왔다. 그리고 그 비용을 자기 사비로 댔다며 생색냈다. 내가 아는 한 그건 재발행될 수 없다. 이미 유통된 책 아닌가. 지금까지도 이해가 어렵다.
이번엔 글 구성을 망가뜨린 예다. 한국 굴지의 수필 전문지, 그 편집장은 글 첨삭 교열에 특별한 능력을 갖춘 분이어서 신뢰도가 높은 곳이다. 하지만 거기서도 일이 벌어졌다. 형식과 의미를 살리기 위해선 6군데 행을 내려야 했는데 모조리 올려 붙여버렸다. 그걸 발견한 순간, 망했다! 절망감이 칼이 돼 머리를 내려쳤다. 살상사(殺傷死)한 글.
이게 산문이어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 어이없는 일도 있다. 미주 지역의 유수한 문예지라는 곳에서 대표작 세 편을 요구했다. 송고한 중 한 편은 시의 구성과 비교해 수필의 구성과 형식을 설명하는 글이었다. 한데 5연 구성의 인용 시를 모조리 붙여서 5행시를 만들어 버렸다. 독자가 얼마나 어리둥절하겠나.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글, 압살(壓殺)당한 글이 되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편집자들이 교정을 잘 못 보아 일어난 일이라 치자. 미주 모 일간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그 매체는 새로운 필진을 구성했다. 아마 수입 증대를 위해 독자에게 신선한 지면을 제공하고 싶었나 보다. 몸담은 모임의 요구로 원고를 보냈다. 한데 보낸 글의 ¼이 잘려 발행됐다. 담당자 말로 길이가 길어서 그랬단다. 시간 들여 중간중간 잘라내는 수고하지 말고 애초 길이를 알려 줬으면 문맥을 도살(屠殺)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련만.
그의 태도에 현타가 왔다. 과문인지 모르겠으나 미주에서 글 쓰는 분 중 글로 밥벌이하는 분은 없다. 마이너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라 몸값이 공짜라는 뜻. 즉 글 실어주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라는 분들이 허다하다. 그러니 공짜 상품을 납품받아 소득을 취했으면서도 감사는커녕 오히려 생산자에게 고마운 줄 알라고 배 내미는 기이한 상품 유통 구조를 생성하고 있는 거겠지.
슬프다. 더 슬픈 건 그 모임에선 그 일 처리에 미온적이었다. 그들의 습관적 행태를 잘 아는 거겠지. 그 일간지는 가난한 글쟁이 쥐어짜 수입 취득을 얼마나 할까. 한편 바꿔 생각해 보면 함량 미달의 글이기에 글 값을 쳐주지 않는 것일 수도. 제품 생산자로서 반성해야 할 일이다. 돈이 넘쳐흐르는 세상에 왜 지면(紙面) 종사자들만 가난할까. 서점이며 출판사며 언론이며… 이미 소통의 방법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탓일지도.
그 무렵 선배가 단톡방에 당혹한 문자를 올렸다. 회원들이 순서를 정해 정기적으로 내보내는 지면의 본인 글 뒤가 잘렸는데 독자가 이 글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모임에서 매체에 연락하고, 그 뒤 거기선 사과문과 함께 글을 재수록해 줬다. 흔치 않은 일 처리에 내 아픔은 삼키고 선배를 위로했다. 놀라시긴 했겠지만 이렇게 처리되는 마무리는 흔치 않은 일이니 섭섭함 푸세요. 이런 한 줄기의 선의가 있기에 그래도 용기내 글 쓰고 살아가게 되나 보다.
또 다른 선배에게 나중에 들은 얘기론 심지어 본인 글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내보낸 경험도 했단다. 글을 죽이는 편집자들이 다양하게 많다는 얘기. 글쟁이들에게 글을 죽여주는 행위는 생명을 탈취하는 것과 비슷하다. 글은 글쟁이 자신의 일부이기에.
오늘도 압사한 그 생명이 놓였던 근처를 지난다. 너를 기억하는 나의 선의로 너를 보내버린 생명의 존재를 용서해 줄래? 명복을 빌며 감정의 균형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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