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황정원] 박, 꽃의 비문(碑文)

황정원(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박, 꽃의 비문(碑文)


박꽃은 달빛 아래서 봐야 한다고 한다

나는 달빛 아래 박꽃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걸까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본 적 없는 하얀 박꽃을

생각했다 그 사람을 보면서,


엄마의 어머니 곁에 피었을 소색(素色)의 등

날빛이 붉은 낯을 다하여 저녁을 걷는다

음영속에서 스스로 숨결은 달의 밤을 켰다

아름다움이 그것으로 다하는 뜨거웠던 날

해는 아릿한 밤의 결말처럼 떨어진다

그렇게 피는 꽃이 달빛 아래 박꽃인걸까


어머니의 밤, 위성처럼 꽃은 꽃을 돌보고

그늘을 껴입고도 길 위엔 희고 흰 달

당신이 나를 돌보고 달이 달을 돌보는 밤

검은 세상에서 하얀 이야기를 피우는 일은

단단해야 하는 달지 않은 미래에 목을 맨다


당신이 달고 온 박꽃의 향을 거저 받고서

박이 꽃이었던 그 밤을 생각했다

꽃이 시들면 목을 맨 박들이 여기저기 달렸다

교회에도 절에도 높은데도 낮은데도

불면한 여름밤의 공명을 삼키지 말라고 한다

제 속도 모르면서 꽃의 무덤속을 도려낸다

비문(碑文)을 새기는 줄도 모르고

사람이 꽃의 혼이 되려고 칼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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