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비자 문제 해결 시작됐지만…관세·안보에 韓 외교 부담 가중

E-4 도입 등 '궁극적인 불평등 해결'은 미지수

대미 투자 협상 불협화음 지속…안보 지형 바꿀 '한미동맹 현대화' 논의도 본격화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구금 사태는 결과적으로 한미 간 불합리했던 비자 문제 개선 논의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미국이 얼마나 전향적으로, 궁극적인 비자 문제 개선에 임할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불협화음이 불거진 대미 투자 관련 협상과 곧 본격화할 안보 협상으로 인해 한국의 외교적 부담이 가중되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14일 제기된다.

한미, 워킹그룹 통해 단기·중장기 비자 개선안 논의 예정

한미는 곧 국장급 워킹그룹을 설치해 비자 제도 개선 논의에 나설 예정이다. 현재 외교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한 워킹그룹 구성 협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워킹그룹 출범 후 첫 조치로 주한미국대사관에 한국 기업인을 위한 '비자 데스크' 신설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업인들의 비자 관련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조치로 예상된다.

동시에 한미는 단기 상용(B-1) 비자의 탄력적 운영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 발생 이후 B-1 비자를 통해 활동 허용 범위를 두고 한미의 입장 차이가 있었음이 확인됐고, 미국 이민 당국의 명시적 기준도 선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해석이 엇갈린 만큼 일단 B-1 비자를 '첫 개편 대상'으로 삼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B-1 비자가 전문 인력의 단기 파견을 위한 상용 비자가 될 수 있도록 미국과 교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와 같이 첨단 공장 건설에 필요한 기업은 물론 기업의 협력업체 전문 인력들이 더 많이 B-1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이 인력이 현지 직원 교육 등 공사와 관련한 폭넓은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도 이같은 한국 정부의 요구사항을 기본적으로 수용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로 인해 다른 기업들의 미국 내 활동에도 지장이 있는 만큼, 일단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의 활동이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는 방안은 적극 수용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후 워킹그룹을 통해 기술·공학 등 전문 직종 외국인을 위한 H-1B 비자의 한국인 쿼터 신설이나, 지난 2012년부터 '동반자법'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의회를 통해 입법을 추진 중인 1만 5000개의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E-4) 쿼터 신설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체포됐던 한국인 근로자가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공동취재)2025.9.12/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체포됐던 한국인 근로자가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공동취재)2025.9.12/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美, '급한 불' 끄면 태도 바뀔 가능성 커…'안보 협상'으로 기류 변화 시도 우려

일단 미국 측도 원활한 대미 투자를 위해선 비자 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가 '비자 시스템 개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점은 긍정적인 면이 있다.

다만 당장 미국에 들어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지위를 보장하는 문제가 해결된 뒤, 미국이 신규 비자 및 쿼터 신설엔 미온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이번 비자 문제가 대미 투자 문제와 관련이 있는 만큼 한미 간 불협화음이 감지되는 투자 협의와 맞물린다면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비자 문제에서도 돌연 날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 모처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나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의 구조, 방법, 이익 배분 방식 등 세부 내용 등을 놓고 합의 도출을 시도했으나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각) 한국인 근로자들이 석방되자마자 현지 매체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한 일은 관광 비자로 들어와 공장에서 일한 것"이라며 "그들은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라고 발언하는 등 비자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국방비 및 방위비 인상,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역할·규모 재조정 등 이른바 '동맹 현대화' 논의는 이제야 본격적인 협상이 전개될 전망이다. 이 사안은 관세와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순탄하지 않은 협상이 예상된다. 특히 이는 미국이 중국을 직접 겨냥하는 조치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선 자칫 중국으로부터의 공세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일각에선 비자 문제로 수세에 몰린 미국이 기류 변화를 위해 안보 협상 테이블에 강력한 청구서를 들고 올 가능성도 제기한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 국무부는 조지아주 사태 해결을 위한 한미 외교장관 면담 결과를 밝히며 뜬금없이 "루비오 장관은 한국의 대미 투자를 환영하며 관련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다"거나 "두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억지력을 강화하고 공평한 방위 부담 분담(equitable defense burden sharing)을 확대하며 한미동맹을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을 논의했다" 등의 내용을 전한 바 있는데, 이것이 미국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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