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84% 내줄판…韓 "통화스와프 없인 협상 없다" 배수진

현금투자 요구에 외환보유고 고갈 위험…韓 "통화스와프 먼저"

"시한 없다" 정부 배수진…11월 APEC 정상회담이 협상 분수령


한미 관세 협상의 판이 '통화스와프'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미국의 대규모 직접 투자 요구에 맞서 한국 정부가 통화스와프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며, '시한 없는 장기전'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다. 이로써 양국 간 협상은 통상 문제를 넘어 금융안정 이슈로 전선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대통령실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 대통령의 면담 직후에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연이어 베선트 장관과 회동하고 통화스와프 문제를 공식 논의했다.

李 '상업적 합리성' 강조…관세협상 중심, 통상서 금융으로

이 대통령은 면담에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와 관련해 '상업적 합리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상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 양국의 이익이 부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이에 대해 "내부적으로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번 협상의 최대 쟁점으로 통화스와프가 부상한 배경에는 미국 측의 투자 방식 요구 변화가 있다. 당초 대출이나 보증 형태가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에 대해, 미국이 대부분을 '현금 직접투자' 방식으로 이행할 것을 요구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정부는 이 같은 요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3억 달러로, 3500억 달러는 이 중 84%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만약 이 금액이 단기간에 현금으로 빠져나갈 경우, 외환시장의 변동성에 대응할 '실탄'이 고갈돼 환율 급등 등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역시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스와프는 필요조건' 배수진…11월 APEC '빅딜' 주목

정부가 '통화스와프'를 역제안한 것은 과거 위기 때마다 그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통화스와프는 비상시 상대국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달러 등 상대국 통화를 빌려올 수 있는 계약으로, 외환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달러·원 환율이 1400원대까지 치솟았지만, 3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 하루 만에 177원 급락하며 시장이 안정됐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쇼크 때도 600억 달러 규모의 계약 발표만으로 환율이 40원 가까이 떨어지는 등 통화스와프는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소방수' 역할을 해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 대통령과 베선트 장관 면담 직후 브리핑에서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필요조건"이라며 "그 문제가 해결 안 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통화스와프라는 안전판 없이는 대규모 투자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협상과 관련해 "데드라인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미국 측의 입장 변화 없이는 협상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오는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이뤄질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 간 만남이 협상의 주요 분수령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김 실장은 "경주 APEC이 중요한 계기이고, 양국 정상 간 미팅이나 면담은 당연히 있을 것"이라며 "협상팀에서도 이러한 국제행사를 중요한 기회로 인식하고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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