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현금으로 3500억 달러" 압박…'통화스와프' 있어도 "무리수"

트럼프 "선불 조건" 강조…투자 규모도 5500억 달러로 증액 압박

전문가 "통화스와프는 응급수혈일 뿐…국부유출·제조업 공동화 우려"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고 있는 3500억 달러(약 494조 원) 규모의 '직접 투자'는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더라도 현실화되기 어려운 규모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설령 체결되더라도 외환보유고의 84%에 해당되는 국부 유출과 그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압박 수위 올리는 美에 맞서 '무제한 통화스와프' 카드…현실 가능성은 '글쎄'

28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한국 정부에 3500억 달러 규모의 직접투자를 요구한 데 이어, '선불(up front)' 조건을 요구하고, 투자액 증액까지 언급하는 등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한미 무역 합의에 따른 3500억 달러 투자에 대해 "그것은 선불"이라고 못 박았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투자 규모를 5500억 달러까지 늘려야 한다고 언급하며 압박에 가세했다.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 충격을 막기 위해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며 배수진을 쳤다. 정부가 통화스와프를 협상 전면에 내세운 배경에는, 미국의 요구가 단순 보증이나 대출이 아닌 '현금 직접투자'라는 점에 있다. 막대한 현금이 단기간에 빠져나갈 경우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필요조건"이라며 "그 문제가 해결 안 되면 그다음부터 나아갈 수 없다"고 강조하며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공식 협상 의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통화스와프 체결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은 과거 경제 위기 상황을 제외하고 비기축통화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은 전례가 없다. 이미 우리 측의 제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도 알려졌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 무제한·상시 통화스와프를 해주면 미국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에도 문을 열어줘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미국이 통화스와프 요구를 들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통화스와프 체결은 사실상 어렵다는 의미다.

"무제한 통화스와프 만능 아냐…국부 유출·시장 부담 감안하면 불가능"

설령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의 패닉을 막는 '응급수혈'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3500억 달러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8월 말 4163억 달러)의 84%이자, 한 해 예산(673조 3000억 원)의 73.4%, 국내총생산(GDP)의 약 19%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막대한 규모의 현금이 빠져나가면 금융시장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허준영 교수는 "무제한 통화스와프가 있으면 환율 절하 폭은 좀 덜하겠지만, 있다고 해서 원화 절하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며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3500억 달러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는 것은 물론, 국내 유동성이 흡수돼 시장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규모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면 시중에 풀려있던 원화가 흡수돼 돈이 귀해지면서 금리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위축시켜 실물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또한 통화스와프는 만기가 되면 이자를 포함해 갚아야 하는 '대출'이기 때문에 이 역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 공동화' 역시 문제로 꼽힌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곧 국내에 지어져야 할 공장이 미국에 들어선다는 의미다. 허 교수는 "어떤 상황이건 간에 우리나라 제조업의 공동화가 좀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결국 실물 부분에서도 당연히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의 요구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태봉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와 여건 대비 그냥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국에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통화스와프를 체결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결국 외교적 협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투자를 장기간에 걸쳐 분할 집행하는 방식 등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 교수는 "사실상 미국이 요구한 규모의 직접투자는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외교적 협상력이 중요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치적을 만들어주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전날(27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의 현금투자 요구에 대해 "객관적으로, 현실적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 실장은 "협상 전술에 따라 그런 입장을 밝힌 게 아니다"라며 "(현금 출자가 불가능하다는 건) 대한민국 누구라도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여야를 떠나 누구라도 할 수 없어서 대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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