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배임죄' 폐지한다…경제형벌 110건 대수술 착수

당정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 발표…"경영활동 위축 막겠다"

형량 줄이고 징벌적 손배 책임 강화…경미한 위반은 과태료 전환


정부와 여당이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기본방향으로 정했다. 배임죄가 요건이 추상적이고 적용 범위가 넓어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위반 행위에 비해 형사처벌 수위가 과도하게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형량을 낮추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보고·신고 의무 위반 등 경미한 사례는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 부과로 전환한다.


당정은 30일 국회에서 협의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경제형벌을 1년 내 30% 정비하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배임죄 개선을 포함한 선의의 사업주 보호 △형벌 완화 및 금전적 책임성 강화 △경미한 위반행위의 과태료 전환 △先행정조치-後형벌부과 등 5개 유형으로 개선 과제를 선별해 110개 경제형벌을 개선 대상으로 선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사업주의 형사처벌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추진했다"며 "기업의 위법 행위 억제에 효과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과징금 부과 등 금전적 책임성을 강화하는 그런 방안도 함께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배임죄, 추상적이고 예측 가능성 낮아…"올해 검토 끝내겠다"

 

이번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의 핵심은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해 사업주의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 있다.


배임죄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가하는 범죄를 말한다.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제범죄로 단순배임죄, 업무상배임죄, 배임수재죄, 배임증재죄 등이 있다. 이 중 업무상 배임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배임죄는 범죄의 구성요건이 추상적이고 적용 범위가 넓어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수사·재판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특히 기업뿐 아니라 민사 영역까지 확대 적용돼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또 법률전문가가 아닌 기업, 단체, 공무원, 일반 국민 입장에서 어떤 행위가 배임인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꾸준히 제기됐다.


정부는 배임죄 형벌을 폐지하는 대신, 배임죄의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 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대체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예를 들면 기업이 어떤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과연 이 금액이 적정한지 여부를 망설이게 된다"며 "왜냐하면 그것이 나중에 배임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판례를 보니까 주체들도 너무 많고 예측 가능성이 굉장히 작기 때문에 일단은 배임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하기로 했다"며 "전문가 자문도 거치고 집중검토도 해볼 예정으로, 올해 검토를 최대한 끝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부는 최저임금법 양벌규정을 정비해 '상당한 주의·감독을 다한 사업주'에 대한 면책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면책규정 미비로 2017년 노동조합법 양벌규정이 위헌 결정을 받은 것에 따른 후속 조치다.


기재부 관계자는 "위헌 결정의 요지는 양별 규정이 있을 때는 면책 규정을 같이 도입을 해야 된다는 취지였는데, 아직 개선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며 "추후 작업할 때는 전 부처의 양벌 규정을 전수 조사해서 처벌할 필요성이 없는 경우에는 양벌 규정 폐지 방안도 같이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형량 줄이되 손배 책임 강화…과징금 늘린다

 

정부는 법 위반 정도에 비해 형량이 과도한 형벌은 완화하는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선주상호보험조합법상 조합 임원 등이 조합 이익을 특정인에게 부당하게 배당한 경우 징역 최대 7년 또는 벌금 7000만 원을 부과해 왔다.


정부는 이를 징역 최대 3년, 벌금을 최대 3000만 원으로 낮추는 대신,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손해액의 2배 이내)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또 배달로봇 등 실외이동로봇의 안전인증사항에 대해 변경 인증을 받지 못한 경우 징역 최대 3년 또는 벌금 최대 3000만 원을 부과해왔으나, 형벌 조항을 폐지하고 과징금을 최대 5000만 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금전적 책임성을 강화한다면, 어떠한 기준을 얼마나 강화해야 하느냐는 부분에 대해 충분한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번에 굉장히 필요한 부분만 남았고 2차, 3차 작업할 때 중점적으로 보겠다"고 말했다.


중기·소상공인 의무 위반 형벌 폐지…과태료로 전환

 

정부는 또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의 경미한 행정상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형벌 제도를 폐지하고 과태료로 전환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트럭 소유자가 시장·군수·구청장의 승인을 받지 않고 적재함 등을 튜닝할 경우 현재 자동차관리법에서는 징역 최대 1년 혹은 벌금 최대 1000만 원을 부과한다. 정부는 형벌을 폐지하되, 과태료 최대 1000만 원과 원상복구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또 숙박업·미용업·세탁업 등 공중위생영업 변경신고나 지위승계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공중위생관리법에서는 징역 최대 6개월 또는 벌금 최대 500만 원을 규정하고 있으나, 정부는 형벌을 폐지하고 과태료를 최대 1000만 원으로 상향할 방침이다.


채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파산에 관한 필요한 설명을 하지 않을 경우 현행 채무자회생법에서는 징역 최대 1년 또는 벌금 최대 1000만 원을 부과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바꿔 형벌 조항을 폐지하고, 과태료를 최대 1000만 원까지 물도록 했다. 단, 허위 설명 시 지금의 형벌 조항을 유지한다.


아울러 비료관리법에서는 습기, 마찰 등으로 비료 포장지 제품명, 제조사 등 표시가 훼손된 경우 징역 최대 2년 혹은 벌금 최대 2000만 원을 부과하고 있다. 정부는 경미한 위반에 대해선 형벌을 폐지하고 과태료도 최대 200만 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부분은 저희가 이번에 가장 중점을 뒀다"며 "보고나 신고자료 제출, 보관 등 경미한 행정상 의무를 위반했을 때 형벌보다는 행정 제재와 과태료로 전환하는 과제로 총 68개를 담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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