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화재는 예고된 인재…감사원 수차례 경고에도 대응은 없었다

감사원, 노후장비 관리부실 경고에도 방치된 관리 체계

전문가, 데이터 관리 '구조 개선 필요성' 강조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전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행정정보시스템 600여 개가 마비된 사태는 단순한 돌발 재난이 아니라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감사원이 이미 여러 차례 재해복구 미비와 노후 장비 관리 부실을 경고했지만, 관계 부처가 실질적 개선에 나서지 않으면서 국가 전산망 먹통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29일 감사원은 지난 2023년 11월 국가정보통신망(국통망) 장애로 주민등록등본 발급 등 189개 행정정보시스템이 이틀간 마비된 사태와 관련해 "노후 장비 관리 부실과 관제 실패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의 이 같은 경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감사원은 '지능정보화 사업 추진 실태 감사'에서 국정자원이 관리하는 1428개 행정정보시스템 중 92.6%가 재해복구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중요 시스템조차 40% 이상이 미구축 상태였으며, 공통 네트워크 장비는 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려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 당시 감사원은 "장애 발생 시 전국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불과 1년 만에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2023년 11월 국통망 장애 역시 노후 장비 관리 부실과 관제 실패에서 비롯됐다. 당시 8년 된 L3 라우터가 고장 났음에도 교체가 지연됐고, 경고 알림을 무시해 주민등록등본 발급 등 189개 시스템이 이틀간 마비됐다. 이번 화재 역시 오래된 리튬이온 배터리 발화, 비전문 인력의 관리 소홀, 이중화·재해복구 미비라는 동일한 문제 구조를 드러냈다.

특히 이번 화재는 리튬이온 배터리 발화가 직접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태 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화재와 같은 긴급 상황 발생시에 국가 전산망이 안정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이중 안전 장치가 구축돼 있어야 했지만, 이에 대비하지 못하면서 600여 개 시스템이 동시 정지했다. 재난대응 체계도 부실해 일부 시스템은 복구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전원 설비와 공통 인프라 장비 관리가 뒷전으로 밀린 사실은 지난해 감사에서도 지적된 사안이다. 결국 지속적인 경고등에도 이를 방치한 부실 대응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국정자원과 행정안전부에 관리 체계 개선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는 제도 보완을, 기획재정부에는 예산 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이번 화재에서는 책임 떠넘기기만 부각됐다. 국정자원은 2023년 행정망 장애에 이어 이번 화재까지 발생하면서 반복적으로 ‘전국적 혼란의 진원지’가 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치권도 정부 책임을 겨냥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2024년 감사 지적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은 재난 대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무능과 무대책이 초래한 참사"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구조적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본원과 분원 사이에 실시간 이중화가 안 돼 있었던 점, 서버와 리튬 배터리를 한 공간에 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며 "공주 분원 등 대체 센터를 신속히 가동하고 배터리 분리 배치를 포함해 구조적 재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화재로 하루치 데이터가 손실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재해복구 체계가 액티브-액티브가 아닌 액티브-패시브였던 것으로 보여, 데이터 손실 여부를 범정부 차원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감사원은 이번 화재와 감사원 감사결과의 직접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감사원 측은 "이번 화재는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 2023년 국통망 장애 감사 결과와 1대1로 대응시키기는 어렵다"며 "감사원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관계 부처에 통보하는 역할을 할 뿐, 이후 대책 수립과 실행은 각 부처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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