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핵잠 도입' 공식화…李 대통령 파격 제안으로 트럼프 '결단' 유도

[한미정상회담] '핵무기 탑재' 아닌 '핵연료 추진' 잠수함 확보 시도 첫 확인
위성락 "美, 적극적 협조 의사 밝혀…원자력 협정 개정 협의 곧 시작"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승인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핵추진잠수함 도입은 30여년 간 우리 군의 숙원사업으로, 한미가 이 사안을 놓고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韓 '핵 능력' 확장에 美 호의적…원자력 협정 개정 통한 핵잠 도입 본격화

이 대통령은 이날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확대오찬 모두발언에서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께서 결단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디젤 잠수함이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을 추적하는 활동에 제한이 있다"라며 "연료 공급을 허용해 주시면 저희가 저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해서 우리 한반도 동해·서해에 해역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군의 부담도 상당히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부분에 대해 실질적인 협의가 진척될 수 있도록 지시해 주시면 좀 더 빠른 속도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핵추진잠수함과 관련해선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한반도는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전쟁 상태인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 대통령과) 함께 이야기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핵추진잠수함 관련 요청은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닌 과거 미국의 행정부는 한국의 핵 능력이 확장되는 것이 한국의 '핵 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군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이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이 제한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한반도 안보 공백 우려가 제기되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등 동북아 안보 지형 변화를 추진하고 있어, 그만큼 한국의 우려를 덜어줄 방안을 모색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핵 능력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 최근 한미 간 논의의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한국이 온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는 논의가 본격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현행 협정은 연구 목적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20% 미만 저농축 우라늄의 생산은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선 미국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정부는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1순위' 사업으로 추진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대통령이 공개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작심하듯 핵추진잠수함 도입 관련한 요청을 한 것은 한국의 핵 능력 확장을 수용한다는 미국의 기조가 확고함을 확인함과 더불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즉답을 받아 쟁점 사안을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정상회담 후 브리핑에서 "동맹 현대화를 위한 여러 전략적 현안에 대해 미국 측의 적극적 협조 의사를 확인한 것이 핵심 성과"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위 실장은 그러면서 "기존의 한미 원자력 협정은 군사 분야에는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조정해야 절차가 완성될 것이다. 손을 봐야 한다"라며 "이날 정상 차원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진전을 위해 협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재명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핵잠 도입은 '30년 숙원사업'…'핵무기 탑재'와 '핵연료 추진'은 달라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개발 시도는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바 있다. 이에 우리 군과 원자력 전문가들은 러시아 핵잠수함과 소형 원자로 기술을 입수해 극비리에 사업을 추진했으나 결정적인 성과는 내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핵추진잠수함 건조 사업이 추진됐으나, 200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우라늄 농축 시설 사찰과 정부의 건조 계획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문재인 정부도 사업을 재추진했고, 미국 측에 핵 연료를 공급받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측은 핵 비확산 원칙을 내세워 우리 정부의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이 대통령이 언급한 '연료 공급'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말하는지는 선명하지 않다. 다만 전문가들은 원자력 협정 개정을 통해 핵추진잠수함의 원료가 되는 저농축 우라늄(농축률 20% 이하)을 한국이 자체 생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로 보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관련 연료를 공급받겠다는 취지의 발언이 아니라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미 핵 연료 사용이 가능한 소형원자로 등 핵추진잠수함의 엔진 개발 기술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핵추진잠수함은 원자력 발전 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잠수함으로, 디젤 기관 등을 사용하는 재래식 잠수함보다 잠항 시간이 월등히 길다. 소음도 기존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적어 은밀성이 뛰어나 현대 해전의 핵심 무기로 꼽힌다.

우리 군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직 발사 능력을 이미 확보한 만큼,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북한 등에 대한 상당한 억제력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날 이 대통령은 "연료 공급을 허용해 주면 우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해 한반도 동해, 서해에서 해역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국의 부담도 상당히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주변국인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핵추진잠수함(SSBN)이 아닌 전술 역량 강화를 위한 재래식 무기 탑재만 가능한 전술핵추진잠수함(SSN)을 개발하겠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위성락 실장은 브리핑에서 이를 '재래식 핵추진잠수함'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해군 중령 출신인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원료를 확보하게 되면 핵잠수함 운용을 위한 동력원으로 운용하고 처리할 능력을 갖게되는 것"이라며 "핵무기 제작 기술만 확보하면 전략핵추진잠수함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아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가 현실화할 경우 인도·태평양 안보 지형에 미칠 파장도 주목된다. 우리나라는 서해는 중국, 동해는 일본과 닿아있기 때문에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는 특히 중국의 강한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핵잠수함을 보유, 운용하는 국가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인도 등 6개국뿐이다.

반면 지난 21일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차기 정책 과제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수직발사장치 탑재 잠수함 보유를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사실상 핵잠수함 도입을 공개적으로 시사하는 발언이다. 그 때문에 일본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의 경우 미국·영국과의 방위 협정인 오커스(AUKUS)에 의거, 대중국 견제 차원에 따른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이전받기로 약속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위 실장은 "대통령이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을 추적하는 활동'을 언급한 취지는 꼭 특정국의 잠수함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북한, 중국 쪽 수역에서의 잠수함들을 말하는 것"이라며 "잠수함이라는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스텔스 전력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 주변 수역에선 누구의 잠수함이든 잘 탐지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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