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제안에 냉담한 북한…北美 만남 세 가지 시나리오는

"北, 막판까지 심사숙고"…담화로 대응하며 '상황 관리' 가능성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지 사흘째인 27일에도 북한은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미 소통을 담당할 최선희 외무상이 전날 러시아로 출국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본행사(경제 지도자 회의)가 열리는 31일쯤에야 귀국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이 사실상 만남을 거부하는 메시지를 낸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한 상황이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면전에서 그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남은 어렵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입장을 미국에 전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출국하면서 "김정은 총비서는 내가 (한국에) 가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만남에 100% 열려 있다"며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의 '깜짝 회동' 추진 의사를 밝혔다. 그는 또 "북한은 일종의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발언해, 북한이 줄곧 요구해 온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무시하긴 어렵다"…北의 세 가지 대응 시나리오

전문가들은 북한이 만남에 관심이 없다는 시그널을 내고 있다면서도, 트럼프의 제안을 '무응답'으로 외면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시'에 불쾌함을 느낄 경우 대북 기조를 180도 다른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침묵은 지금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며 "최소한의 신뢰 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적절하게 거절할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북한의 대응 방향은 세 가지 시나리오로 압축된다.

첫 번째로는 최선희 외무상 대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 "관심은 있으나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다. 지난 2019년 6월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긴급 회동 때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제안에 최 외무상이 5시간 만에 호응하는 담화를 내면서 회동이 빠르게 성사될 수 있었다.

이 전례로 인해 최 외무상이 움직인다면 북한이 미국과의 만남을 위한 실무적인 대응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북한이 당장 직접 만남에 관심이 없다면, 최 외무상 대신 김 총비서의 동생으로 '백두혈통'의 권위가 있는 김 부부장이 나설 수도 있다.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만남은 거부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차원에서다.

두 번째는 김정은이 직접 메시지를 내는 것이다. 트럼프의 방한 전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활동 혹은 연설 형식을 빌려 대미 메시지를 내는 방안이 거론된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는 것이 권위에 손상을 주는 행동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김 총비서는 이미 지난달 말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라고 공개적으로 '친분'을 자랑한 바 있다.

김여정 부부장 역시 지난 7월 대미 담화에서 김 총비서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면서도, "조미(북미) 사이의 접촉은 미국의 희망일 뿐"이라며 지도자 간 친분과 국가 간 외교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북한의 기조는 김 총비서가 직접 나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친근한 메시지'는 얼마든지 낼 수 있다는 외교적 공간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다만 김 총비서가 직접 메시지를 내더라도 만남 자체는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초청한다거나, '만날 날을 기다린다' 등의 외교적 수사를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는 뉴욕 채널 등 비공개 접촉이다. 공개 거절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협상 여지를 남기는 '리스크 최소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북한이 한국 등 다른 나라에 '잘못된 메시지'를 주지 않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자칫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힐 경우 이것이 북미 대화의 분기점으로 해석되는 등, 양자회담을 선호하는 북한의 입맛에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다만 비공개 채널을 통해서도 두 정상의 친서가 오갈 수 있는 만큼, 오히려 이 방식이 가장 긴밀한 소통을 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이번엔 만나기 어렵지만 조만간 기회를 보자'는 식으로 정중히 거절할 가능성이 있다"며 "김정은이 직접 메시지를 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도 "아직은 시기상조라거나 앞으로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정도의 소통이 예상된다"며 "비공개 화답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합적으로 보면 현재의 상황은 북미 정상의 회동이 즉각 성사될 가능성은 작지만, 대화의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상태로 볼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북미 간 소통의 장은 조금씩 넓어질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화의 불씨는 확실히 이전보다 살아났다"며 "이번에는 만남이 어려울지 몰라도 내년쯤 양측이 조건을 맞춰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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