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허정덕 목사] 소금과 빛의 비유

허정덕 목사 (시애틀물댄동산교회 담임)


소금과 빛의 비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의 이 짧은 말씀은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를 각성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존재의 책임을 묻는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작지만 고대에나 현대에나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유익한 물질입니다. 방부재, 조미료, 제설제, 비료, 약재 등 우리 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유용하게 쓰여지는 필수품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핵심은  이러한 소금의 유용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금이 가진 그 ‘짠맛’ 자체에 있습니다. 짠맛을 잃은 소금은  다시 충전할 수도, 되살릴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짠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모가 없어 그저 길가에 버려져 밟힐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겉모습은 여전히 교인일지 몰라도, 내면의 ‘짠맛’—거룩함, 진실함, 순수한 믿음과 같은 제자도—을 잃어버리면 세상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도대체 무슨 맛이냐?”

교회의 수가 늘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고 교회가 오히려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소금이 아니라 ‘소금기 빠진 가루’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복음>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폴 워셔가 예전에 한국에서 열린 전국 교역자 수련회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 교회 성도들의 숫자가 아니며 우리의 학위가 아닙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가 설교를 잘 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악한 세대가운데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입니다. 설교하는 것은 쉽습니다. 영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속에서 우리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빛 역시 그렇습니다. 빛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습니다. 빛의 존재 목적은 어둠을 밝히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등불을 켜고도 그것을 ‘말(斗) 아래’ 숨겨 버립니다. 신앙을 개인적인 영역으로 가두고, 세상 속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척하며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낼 때 세상에서 받을 박해와 손해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 위의 동네는 숨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존재 목적은 은둔이나 도피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제자됨을 증언하는데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빛을 감추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서 드러내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참된 완성은 교회 안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이뤄집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거리에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순간—그때 비로소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장 16절)는 예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버려지고, 숨겨진 빛은 의미가 없다.” 제자로서의 맛을 잃지 않고 세상속에 예수님의 빛을 비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그것이 참된 제자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미 세상의 소금이며 빛으로 부름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을 따라 살아갈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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