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한 이상민, 장애 딛고 5선 의원…별칭은 '미스터 쓴소리'

생후 6개월 때 소아마비 앓아…열린우리당으로 정계 입문
'이재명 사당화' 이유로 탈당…국힘 대전시당위원장 역할

 

15일 별세한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67)은 1958년 대전 출생으로 제17대부터 21대까지 대전 유성구에서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생후 6개월 때 소아마비를 앓아 그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했고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었다.

학창시절 음악을 좋아하고 '음대 성악과'도 꿈꿨으나 아버지에게 혼쭐이 난 후 학업에 매진했다. 충남대 법학과 졸업 후 '8전 9기' 끝에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대전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4년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대전 유성구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18대 총선 땐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탈당해 자유선진당으로 입당해 당선됐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선진당을 탈당하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다시 민주통합당으로 돌아와 유성구로 출마해 3선 의원이 됐다. 이후 20·21대 총선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4년에는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신당추진단 당헌당규분과위원장에 선임돼 역할하기도 했다.

2023년 12월 이 위원장은 당시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 강성 지지층 중심의 당 운영을 비판하며 탈당한 뒤 2024년 1월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같은 해 4월 실시된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해 6월부터는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을 맡아 역할 해왔다.

17대 초선 시절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 겸 법안소위위원장을 맡아 당시 한나라당을 설득해 밀린 법안들을 통과시켜 협상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성향으로, 당에서 쓴소리를 도맡아 하며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려왔다. 그러면서도 유쾌하고 소탈해 의원들과 두루 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 40세가 되던 1998년에 12세 연하 부인과 결혼해 슬하에 2남 1녀를 뒀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9시 33분께 대전 유성구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대전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1958년 대전 출생 △충남대 법학과 졸업 △사법시험(34회) 합격 △대덕대·우송대·충남대 겸임교수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 △제17·18·19·20·21대 국회의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당 위원장 △국민의힘 대전광역시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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