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문해성] 밥

문해성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건강을 위해 잡곡밥을 먹는다. 그래도 밥은 역시 흰쌀밥이 제일이다. 갓 지어낸 윤기 흐르는 쌀밥은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특유의 향과 부드러운 목 넘김은 주식으로 이만한 음식이 또 있을까 싶다.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이 시대에 이렇게 쌀밥 예찬을 하는 나는 옛날 사람일까. 어쩌면 그것은 먹지 못했던 유년 시절의 허기도 한몫했을 수 있다.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것을 이제는 건강을 위해 피해야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탄수화물이 주는 건강에 안 좋은 점이 주목받으면서 애꿎은 흰 쌀밥이 수난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주식인 밥을 대신할 만한 것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먹어야 한다면 건강하게 먹고 싶다. 그래서 현미밥 잡곡밥 등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좋아하는 여러 종류의 콩을 듬뿍 넣고 조 수수 검은 쌀까지 넣으면 흰쌀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건강한 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면죄부를 받은 듯 죄책감이 사라진다. 

어린 시절 매일 지겹도록 먹던 꽁보리밥, 점심으로 먹었던 고구마, 함께 먹던 감태 김치, 무청 김치, 조 쑥떡…. 당시는 상품 가치가 없던 미역 줄기와 감태는 늘 우리 집 밥상에 올랐다. 바다에서 바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조류였다. 겨울철에 연푸른 그 음식을 보면 차가운 바닷냄새가 함께 따라와 금방이라도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그랬던 것들이 이렇게 주목받고 귀하게 대접받을 줄 누가 알았을까. 

보리밥에 대한 싫은 기억은 어쩌면 쌀밥 때문인지 모른다. 명절이나 제삿날이라야 먹던 쌀밥의 달콤한 맛을 잊을 수 없었나 보다. 보리밥을 먹었던 기간이 십여 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아직도 싫다. 그때 물려도 단단히 물린 모양이다. 건강을 위해 잡곡밥을 먹는 요즘도 보리는 절대 넣지 않는다. 건강에 좋다고 해도 약처럼 입속에서 맴도는 식감과 맛 때문이다.

쌀밥의 희고 부드러움은 마치 도시 사람들을 연상하게 했다. 방학이면 도시에 사는 내 또래 애들이 섬을 찾아오곤 했다. 하얀 피부의 그들이 부러웠다. 세련된 서울말을 들으면 투박한 사투리를 쓰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들은 매일 쌀밥만 먹고 살아서인지 도시에서 오는 애들은 다 예뻐 보였다.

건강을 위한 밥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일 어려운 과제인지 모른다. 여러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매일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 앞에 쌀을 빼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영양가 있게 먹는 방법은 없을까. 그 바람에 답이라도 하듯 많은 이름표를 단 쌀들이 등장했다. 현미 흑미 반반미 가바쌀 상황버섯 쌀 등 건강을 내세워 쌀을 판다. 쌀이 건강이란 옷을 살짝 걸치고 현혹한다.

최근에는 혈당을 낮춘다는 바나듐 쌀이 등장해 인기라고 한다. 나처럼 쌀밥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혹할만하다. 특히 당뇨병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구세주가 나온 것처럼 반가웠을 것이다. 보통 쌀보다 세 배 이상 가격이 비싸지만 요즘 제일 많이 팔리는 쌀이란다. 그래서 조사를 해 봤더니 바나듐 함량이 0.000몇 퍼센트라고 했다. 이 정도는 거의 무의미한 양이라고. 껌 하나만 씹어도 이보다 세 배는 높게 나오고 코코아는 여섯 배 수준이라고 한다. 절실한 사람들의 마음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이름표를 달고 이용한 것이다. 알았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거란 어느 소비자 말이 아프게 와닿았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는 열망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행사에서 권력자들의 속내가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나누는 그들의 은밀한 대화가 전파를 탔다. 장기 집권을 하는 70세가 넘은 권력자들의 최대 관심사가 자신들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였다는 것. 장기 이식으로 150살을 넘어 영원히 살 수도 있다고. 비록 사적인 대화라고는 하나 그들의 끝없는 야욕을 듣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인간의 생명이 유한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말은 세상에 어떤 탐욕이 있어서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은 소망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약한 모습으로 그들의 도움을 길게 받게 될까 봐 염려하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꿈을 꾼다. 잡곡밥에 보리 한 줌을 넣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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