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정동순] 겨울 아이스크림 가게
- 24-12-09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겨울 아이스크림 가게
동네에서 제일 인기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앞을 지나간다. 가게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이 휘황하다. 가게 안에는 점원도 손님도 보이지 않는다. 가게 안은 벽지 색마저 바래 보인다. 색색의 아이스크림 통이 가득한 투명 아크릴 진열대 앞에서 딸기, 바닐라, 피스타치오, 민트 초코칩... 무슨 아이스크림을 고를까, 눈을 반짝이며 떠들썩했던 사람들. 가게 앞까지 긴 줄이 늘어섰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우리 아이들에겐 사 준 적이 별로 없는 아이스크림. 콘을 고르고 색색의 토핑을 뿌리면 웬만한 점심값보다 비쌌다. 어느 여름날,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나오는 다른 아이를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간절해 보이는 아이의 눈빛을 외면하고 손을 잡아당겨 잰걸음을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는 늘 ‘안 돼’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시애틀의 U 디스트릭트에는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라는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비싼 가격에도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어떤 글에서 시애틀에 여행하러 온 낯선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남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는 낯선 사람들에게 즐거운 추억 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어떤 따뜻한 마음이 낯선 한국 여행객들에게,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라고, 말하게 했을까. 그도 젊은 날 나처럼 아이스크림에 대한 어떤 동경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아이스크림은 혹시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맘껏 먹어 보지 못한 젊은 날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는 아니었을까. 멋대로 상상해 보았다.
사실, U 디스트릭트 가게에 줄 선 그들에게도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그날이 그 어떤 특별한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는 소시민들이 얼마나 자주 비싼 아이스크림 가게에 드나들겠는가. 하지만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늘어선 줄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다 여유가 있구나. 나는 뭐야? 퀭하게 홀로 마음이 힘들어진 사람이 골목 한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아이스크림이 다른 음식과 다르다. 아이스크림의 상징성은 여유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는 배가 고파 먹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음식으로 포만감을 느낀 후 디저트로 먹는다. 슬프거나 화가 났을 때 아이스크림을 먹기보다는 좋은 사람과 수다를 떨면서, 혹은 땀 흘린 단체 운동 경기가 끝나고, 수고했다 응원해 주는 날 어울리는 간식이다. 이럴 때 아이스크림은 잠시 인생의 달콤함과 상큼함을 담고 있다.
노년의 미국 대통령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사진을 통한 정치적인 순간일지언정, 그에게서 정치의 모든 고단함을 뒤로하고 아이스크림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동심을 읽는다. 오드리 헵번이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앞에서 젤라또를 먹는 장면이 상징하는 것을 생각해 봐도 아이스크림은 사람들에게 잠깐의 특별한 즐거움이다. 이후 영화 장면을 따라 하는 여행객들의 행동에 포커스가 아니라, 왜 영화에서 그 장면을 넣었을까 생각해 봐도 그렇다.
아이스크림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그랬을까? 아이들은 스스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만큼 훌쩍 커 버렸다. 어린 자녀에게 아이스크림 하나 맘껏 사 주지 못하고, 엄격하기만 했던 날의 기억은 내 아이스크림에 뿌려진 토핑일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이민 초년생을 떠올린다.
아무도 없는 겨울 아이스크림 가게의 환한 불빛이 어둠 속으로 쏟아져 나온다. 선명한 빛과 어둠의 선명한 대비는 에드워드 호퍼 그림처럼 젊은 엄마였던 나를 그 가운데로 쓸쓸히 앉혀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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