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트럼프 분석' 끝냈나…'높은 허들' 여전하지만 "만날 수 있다"

김정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화 가능성' 처음으로 언급

"美, 비핵화 포기해야" 문턱 높지만…트럼프의 '돌발 외교'에 기대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초 트럼프 2기 출범 후 처음으로 김 총비서가 직접 육성으로 북미대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김 총비서는 미국이 '비핵화'를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는 높은 수준의 조건을 내걸었지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돌발 외교'를 기대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미 대화에 관심이 많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향적으로 '비핵화가 목표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내도록 유도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22일 제기된다.

실패한 협상을 "좋은 추억"으로 언급…유엔총회서 트럼프의 '전향적 연설' 기대

김 총비서는 지난 20~21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 연설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 해제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며 "우리는 절대로 핵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에 대화를 위한 '조건'을 제시하면서도, 미국이 '절대적 신뢰'를 보여 줘야 함을 부각한 셈이다.

김 총비서가 언급한 '좋은 추억'은 지난 2018~2019년에 트럼프 대통령과 진행한 비핵화 협상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당시 협상은 '실패'로 끝났음에도 이에 대한 호의적 언급을 한 것은, 김 총비서가 아직 북미 정상회담을 외교적 과제이자 성과로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그는 "우리가 왜 비핵화를 하겠느냐, 제재를 풀자고 하겠느냐"라면서 "제재 풀기에 집착해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앞으로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비핵화 조치'와 '경제적 보상'을 맞바꾸는 과거 방식의 협상에는 관심이 없다는 메시지를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핵보유국 인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북미관계 재설정이 더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일각에선 김 총비서가 오는 2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전향적 메시지'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나름의 포석을 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간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브콜'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대화 가능성을 제시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반응할 것으로 봤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문제, 미중 갈등의 장기화에 대한 중국, 러시아의 입장을 충분히 청취한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성과 욕구'를 건드린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北, '트럼프 입'에 정세 변화 기대…"시간은 우리 편" 압박 강화도

전문가들은 김 총비서가 '비핵화 불가론'을 강조하며 자신들을 핵보유국 입지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자신들의 '핵 보유'를 인정해야 대화와 협력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6년여 전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대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한미일과 함께 '비핵화'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 총비서가 나름대로 '트럼프식 외교'를 분석하고, 직접 전면에 나서 트럼프를 자신들 쪽으로 움직여 보려 했을 수도 있다. 미국이 정책적으로 '비핵화'를 포기하지 않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는 목표가 아니다'라든가, '북한과 일단 만나고 볼 것'이라는 메시지를 낸다면 협상을 개시해 미국을 자신들에게 집중시킨다는 구상이라는 뜻이다. 이후 '톱다운'(top-down)식 협상으로 사실상 비핵화라는 개념을 의미 없게 하겠다는 의도로도 보인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밝힌 '중단'(동결)→'축소'→'비핵화'의 단계적 해법 구상을 무너뜨리기 위한 의도로도 보인다. 미국을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이면, 한국 역시 미국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구상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

김 총비서는 아울러 이번 연설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라거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우리에게는 더 유리하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임기가 정해진 한미의 대통령이 속도를 내지 않으면 자신들은 멀어질 것이며, 한미에 위협이 되는 '핵 무장'과 북중러 연대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한미를 자극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과 미국 간의 협상은 벌써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하며, 서로 간 주도권과 의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미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뒷배가 있음에도 까다로운 외교 상대일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것은 결국 미국만 해결해 줄 수 있는 제재 문제,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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