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사후 계엄선포문' 폐기 지시했다" 법정 증언 확보

"계엄 요건 갖추기 위한 의도 없었다" 한 전 총리 주장 뒤집어
재판부, 한덕수 공소장 '내란중요임무종사' 추가 허가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작성된, 이른바 '사후 계엄 선포문'에 서명한 지 이틀 만에 "괜한 논란이 될 수 있으니 폐기했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27일 한 전 총리의 내란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사건 4차 공판기일을 열고 강의구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김정환 전 대통령실 수행실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 6일 워드로 작성해 출력한 비상계엄 선포문 표지 문건을 보내 한 전 총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서명을 순차적으로 받은 후 한 전 총리로부터 받은 1장짜리 계엄 선포문에 부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지난해 12월 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마친 후 대통령 서명을 받았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이걸 왜 자네가 갖고 왔나' '날짜가 지났는데 관계없나' 등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재판부가 '서명된 문건에는 총리가 먼저 서명한 거 같은데 보통은 하급자가 먼저 서명하지 않느냐'고 의문을 표하자, 강 전 실장은 "원래 주무 부처인 국방부가 총리실을 거쳐 대통령까지 올라와야 하는데 당시 국방부가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장관이 연락되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서명을 받은 지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 8일 한 전 총리는 강 전 실장과 6분 28초가량 통화하면서 "괜한 논란이 될 수 있으니 폐기했으면 좋겠다"며 "문서가 없어도 국무회의의 실체가 있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한 전 총리는 특검 조사에서 "전체 문서가 아닌, 자신의 서명에 대한 부분만 폐기해달라고 지시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강 전 실장은 "어떤 부분을 특정해서 폐기하라고 하진 않았다"고 증언했다.

앞서 한 전 총리는 첫 공판기일에서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비상계엄 선포문 폐기에 따른 공용서류 손상 등에 관해선 법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며 계엄 요건을 갖추기 위한 의도가 없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는데, 이를 뒤집는 증언이 이날 법정에서 나온 것이다.

강 전 실장 증언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12월 말~1월 초쯤 '계엄 선포문이 어딨느냐'고 강 전 실장에게 물어봤고, 강 전 실장은 "총리께서 논란이 될 수 있으니 폐기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폐기했다"고 답했다.

이에 윤 전 대통령은 "날짜가 사후에 할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느냐"며 "폐기했으면 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재판부가 '대통령이 서명한 문서를 총리의 의견에 따라서 폐기했다는 말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강 전 실장은 "임의로 만들었기 때문에 문건에 대해서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며 "폐기할 때도 그런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강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계엄 선포문을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폐기했다고 진술했는데, 특검 조사에선 문건을 폐기한 후에 보고했다고 진술을 번복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을 대리하는 채명성 변호사가 강 전 실장 조사에 입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술 회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 전 실장은 "그 부분을 채 변호사가 번복하게 만든 것이 전혀 아니다"라며 "순수하게 제 기억을 진술한 것이고, 채 변호사는 대통령실 법률비서관 출신으로 친해서 급하게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작성한 계엄 선포 문건이 1980년 5월 17일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작성한 선포문과 유사하다는 특검 측 지적에 대해 강 전 실장은 "통상 정부 문서 형태는 비슷해서 간략하게 임의로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특검 측의 공소장 변경을 허가했다. 특검팀은 지난 24일 한 전 총리의 공소장에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선택적 병합해달라는 취지의 공소장변경 허가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특검 측은 이날 법정에서 "재판부 요구에 따라 내란우두머리 방조 관련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범위에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택일적으로 추가했다"고 밝혔다.

택일적 추가는 하나의 공소사실에 대해 다른 공소사실을 순위 없이 추가하는 방식으로, 법원이 두 사실 중 하나를 선택해 유죄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에 한 전 총리 측은 "중요임무 종사의 마음을 먹은 것,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의 계엄 포고령 진행에 있어 중요임무에 종사한 것,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언론사 단전·단수) 이행 방안을 논의하고 이행하게 종사했다는 각각의 사실이 없거나 법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날 "11월 중으로 재판을 마치는 것이 목표"라며 신속 재판 의지를 드러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뉴스포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