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진료'했던 의사 "잊으려 해도 쉽지 않은 기억…마지막이길"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교수 인터뷰

특정 부위 멍 자국, 나이에 맞지 않는 표현 등 '아동학대 징후'


올해 응급의학과 17년 차인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료센터 교수는 정인이를 마주한 때를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이런 것이겠다, 이런 육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정인이 사건 이후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아동학대 범죄의 예방을 위해선 적극적인 신고를 위한 '신고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아동 문제에 대해선 무엇보다도 아동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1은 5년 전 정인이를 직접 진료한 남궁 교수를 만나 △정인이 사건 이후 변화한 제도에 대한 의견 △의료진이 아닌 주변 일반 시민들이 아동학대 징후 파악할 수 있는 방법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필요한 부분 등을 물었다.


다음은 남궁 교수와의 일문일답.


-'양천구 아동 학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5년이 다가오는데, 정인이를 직접 진료했던 의사로서 심정이 어떠한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올해 17년 차로 중증센터에서 근무하면서 각종 중환자에 익숙하고, 정말 끔찍한 사건·사고로 온 환자들을 많이 봐왔다. 그런데도 직접적인 외력에 의해 사망한 

10개월 아이를 보는 건 드문 일이다. 이런저런 사건을 잘 잊어버리는 편인데, 잊어버리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은 기억이었다. 당시에도 아동 학대 사건들이 종종 있어 왔지만, 그럼에도 항상 그 사건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이런 사건이 반복된다는 것에 상당히 놀랍고 안타깝고, 슬펐다.


-당시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 같다. 그 이후 힘든 부분은 없었나.


▶(언론에 알려지기 전) 한 달 동안 사실 그 사건을 잊으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 잊어갈 때쯤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 달간의 힘듦을 호출해야 했다. 그때의 사건은 아동보호 단체의 홍보대사도 하며 아동을 보호하는 일 자체에 투신하는 계기가 됐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러한 사례에서 배워야 하는데, 다양한 강의나 예방 교육에서 언급할 일이 생길 때마다 (그날이) 생각나곤 한다.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 진료에 있어 바뀐 점이 있나.


▶사실 우리나라 아동 진료의 원칙 자체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진료에 있어 달라진 점은 없다. 다만 워낙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계속 기억하고, 또 외력에 의해 다쳐 병원에 온 아이들을 볼 때면 아동 학대가 아닐지 한 번 더 의심하는 심적인 부분의 변화는 분명히 있다.


-의료진으로서 아동 진료를 볼 때 아동 학대의 징후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 않나.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의 시각에서 아동 학대 징후를 파악할 방법은 무엇인가.


▶양천동 아동 학대 사건의 정인이는 사실 찍힌 엑스레이(X-ray) 한 장만 봐도 교과서다. 뼈 자체에 시기가 다른 골절이 있었는데, (아이의) 일상 생활에서 외력을 받지 않는 부위가 부러질 이유가 없다. 그런 것들이 2~3개만 있어도 교과서라고 볼 수 있는데, 정인이의 경우는 전신에 골절이 있었고, 너무 명백한 아동 학대라서 당연히 신고해야 하는 것이었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아이가 일반적인 활동으로 다치지 않을 부분에 멍 자국이나 외상이 있거나 아이가 너무 배고파하는 경우, 음식을 과하게 먹는 것, 나이에 맞지 않는 표현을 사용해 말하는 것 등이 징후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정인이 사건 이후 만 2세 이하의 위기 아동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려는 방안으로 필수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거나 1년간 의료기관 진료를 하지 않은 만 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집중 조사했다. 이러한 집중 조사 등의 방안이 아동 학대 예방을 위해 도움이 됐다고 보는가.


▶2세 미만 아동이 소아과에 한 번도 가지 않았거나 의료기관 진료 기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등 방안은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이다. 2세 미만 아동이 필수 예방접종을 맞지 않았다면 매우 치명적이지 않겠나.


사건 이후 관계기관에서도 다양한 제도와 함께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의사 생활을 한 것이 2009년부터인데, 당시엔 아동 학대 의심 신고를 하더라도 경찰관 1~2명 정도 왔다가 "괜찮네요"라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이제는 정말 달라졌다. 아동 학대 신고를 하면 경찰관과 전문 기관 관계자, 공무원 등 유관기관에서 모두 오고, 또 빨리 온다.


-사건 이후 여러 대응책이 실시·강화됐으나 여전히 가정 내에서 아동 학대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주 양육자에서 비롯된 아동학대는 주변인이나 신고 의무자가 알기 어려운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궁극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모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처벌을 중하게 하더라도 또 범죄가 일어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꽤 절망적이다. 그래서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우리가 찾아내야 하고 외부에 신고해야만 하고, 이를 위한 캠페인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오히려 그걸 우리 사회가 이해해야만 찾아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여러 대응책이 나왔지만,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 개선이 필요한 점은 무엇인가.


▶양천구 아동 학대 사건 때도 그랬지만, 동네 병원에서 (아동 학대를) 신고할 경우 동네 병원 운영자는 '혹시 맘 카페에 잘못 올라오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아동 학대 신고 자체가 아직도 부정적이고, 조심스러운 것 같다. 아동 학대 신고 자체가 건강한 양육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맘 카페 등에 '왜 내 잘못을 지적하냐'는 등 악플이 달리게 되면 병원 매출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신고하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를 위해선 신고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료기관뿐 아니라 주변 지인들도 신고할 경우 신고자 보호가 철저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편견을 갖지 않고 아동 학대 피해 아동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아동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정인이 사건 이후로 아동 학대에 대해 국민적인 관심이 쏠렸고, 그러한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두가 알게 된 것 자체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모든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100% 막을 순 없으니, 우리 사회가 관련 문제를 더 알고 공감해야 한다.


또 아동 입장에서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육아하는 어머니의 입장이 아무리 힘들 수 있어도 아동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유일한 목격자일 수 있으므로 신고도 철저히 해야 하고, 정부나 관계기관에선 신고자 보호를 비롯해 사건이 현실적으로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을 갖춰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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