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박순자] 두 눈을 가진 창고

박순자(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이사장)

 

두 눈을 가진 창고

 

일상에서 습관처럼 산책하는 특별한 공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그곳에 가니 바람 먼지가 휘감았다.  알고보니 아름다운 자연미를 뽐내는 이 공원에 미화 작업이 시작된 것이었다.  먼저 주차장을 닫고 출입을 통제했다.  평상시에 산책하는 길만 열어 놓았다.  공원에서 떨어진 곳에 주차하는 불편함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오직 공원의 모습이 확 달라질 그림을 그려보며 기분이 좋았다.  몇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상상외로 공사장엔 몇 사람만 일하고 있고 때론 공사 작업이 중단된 듯 조용한 날들도 꽤 되는 것 같았다.   몇 개의 기계만 덩그러니 놓인 채 한두 명만 일하는 장면이  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별로 일의 진전이 없는 듯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을 목격하면서 한국 사람들의 ‘빨리빨리’가 얼마나 좋을까? 하고 머리에 맴돌았다.  실은 이 네 글자에 편견을 가졌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일 년쯤 지나 호수 앞에  건물 하나가 깔끔하게 지어졌다.  그러면 그렇지, 커피숍이나 간단한 경양식 집이 들어서면 금상첨화이리라.  창을 통해 호수에서 노니는 철새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낭만의 주인공으로 둔갑하겠지…  느린 공사에도 들뜬 기분으로 산책길을 걷곤했다. 

자세히 뒷부분을 살피니 저 건물이 좀 이상하다.  이 층에 창문이 많아야 하는데 하나다.  뒤에서 보니까 그렇겠지, 하고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왠지 머리가 갸우뚱댄다.  혹시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건물이 아닐까?  산뜻하게 페인트칠한 저 건물이 단정하게 바로 호수 앞에 지어졌으니 스낵바 같은 장소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며 기대의 날들로 채워진 산책길이었다.

그동안 건물 하나 벤치 여러 개 지붕이 있는 테이블 네 개 ( 시멘트 작업) 호수 앞 모래사장 볼품없는 몇 개의 정원들 그리고 몇 개의 작은 피크닉 테이블 등 참 초라한 공사는 약 이 년 반 만에 끝이 났다.

호수를 향해 오롯이 지어진 이 건물은 보트를 적재하고 빌려주는 창고로 지어진 사실을 알고 얼마나 실망이 컷는지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아둔해도 창고라면 호수를 끼고 펼쳐있는 숲 잔디에 예전처럼 위치에 있었으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그것도 더운 여름 한 때에만 빌려주고, 비용이 많이 드는지,  이용자들 스스로가 소유하여 가지고 오는 것이 다반사인데, 시민들이 즐겨야 할 안식처에 두 눈을 가진 창고가 자리 잡고 있으니. 우리 부부는 시청에 가서 건의해야 하겠다고 되씹으며 그 건물을 볼 때마다  투덜되는 회수가 많아지곤 했다.  

이제 한국이 모든 면에 선진국 역활을 하고 있음에 한국인으로서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이 공원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놀라운 자연 경관으로 인해 얼마나 최고의 감각으로 디자인되어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장소로 탈바꿈된 공간을 제공했을까 !  아! 그래서 미국이 오히려 후진국이 되었다는 말들을 하는가 ? 

우리가 낭만 객으로 즐겨야 할 장소에 두 눈을 가진 창고가 대신 커피 향과 함께 정취를 즐기고 있구나 하고 오늘도 또 한마디 한다.

이제 또 새해를 맞는다.  나이 먹음에 따라  세월이 더 빠름을 실감한다.  그래서일까?  무감각  무덤덤함을 털어버리고, 새해에는 좀 담대함과 창조적인 일상으로 뚜렷한 목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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