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박영호] 하씨 아주머니

박영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하씨 아주머니

 

10년 전쯤 되었을까, 천안에 계신 엄마의 부탁으로 아버지를 돌봐주실 아줌마를 구하고  있었다. 몇몇 분을 만나보았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이곳저곳 다른 사람을 알아보고 있을 때 하씨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탈북민 출신으로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 고향이 '길주'인 아주머니는 먼저 한국에 온 딸의 도움으로 브로커를 따라 압록강을 건넜다. 그때 절벽에서 굴러 머리와 허리를 심하게 다쳤단다. 아주머니는 죽을 힘을 다해 강을 건너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나이가 많아 일거리를 찾기 쉽지 않다고 했다. 사정이 매우 딱해 보여 일단 일을 시작해보자고 했다.  친정아버지는 파킨슨병으로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한 달이 지났을까, 하씨 아주머니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나 보다. 엄마에게서 아주머니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전화를 받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로 나갔다.천안에서 올라오신 아주머니는 초라한 행색에 조그마한 짐보따리가 전부였다. 그날 따라 비가 내려 그냥 보내드리기가 그래서 밥이라도 같이 먹자며 근처 음식점으로 갔다. 따뜻한 콩나물국밥을 먹으며 아주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군대에 간 갓 스무 살 된 막내아들이 영양실조로 결핵에 걸려 집으로 왔다고 했다.앙상하게 마른 몸에 병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한겨울에 아주머니는 아들이 추울까 봐 시신을 이불에 꽁꽁 싸서 직접 땅을 파고 묻었다. 이제 길주에 남아 있는 큰아들의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느라 꼭 일해야 하는데 나이도 많고 압록강 건널 때 다친 허리 때문에 일감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다.

그날 따라 창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나는 아주머니가 살아온 기막힌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 한가운데가 먹먹해졌다. 아주머니께 브로커 비용이 얼마냐고 물었다. 보통 삼백만 원이 드는데 오백만 원이면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다며 긴 한숨을 쉬셨다.  , 한 사람의 목숨 값이 오백만 원이구나. 이 분한테 그 돈이 있으면 아들을 살릴 수 있는데, 없으면 영원히 아들을 못 볼 수도 있겠구나.

아주머니의 집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태워 드리고 돌아오는 내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오백만 원…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 아주머니는 아들을 살려야지. 나는 많은 생각 끝에 아주머니께 전화를 걸어 내가 그 돈을 준비할 테니 아들을 데려오시라 했다. 내 말을 듣고 아주머니는 많이 놀라며 나중에 꼭 갚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네, 그럴 수 있으면 그렇게 하세요, 말은 했지만, 못 받아도 어쩔 수 없다. 먼저 사람부터 구해야지.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너는 무얼 믿고 그 큰돈을 준다고 했니? 너 그 돈 날렸다, 라고 했다.

몇달 뒤 아주머니에게 아들이 무사히 한국땅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열심히 일해서 그 돈을 갚겠다고 했다.이미 내 손을 떠난 돈은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과 또 한편으론 그 돈으로 사람 하나 구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두 모자가 한국땅에서 뿌리내리고 잘 살기를 속으로 빌었다.

그후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하씨 아주머니께서 전화해 만나자고 하셨다. 오랜만에 온 전화라 반갑기도 했지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집 근처 빵집에서 만났는데 아주머니는 두툼한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세상에! 그 봉투에는 만 원짜리가 수북이 들어 있었다. 아주머니가 오백만 원을 가져오신 것이다. 아주머니가 처한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받으면 좋고 못 받아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장 한장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두 모자의 마음이 전달되어 내 가슴이 저려 왔다.이제는 아주머니의 자녀들이 모두 한국에 정착하여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다.

하씨 아주머니는 헤어질 때, 선뜻 그 큰돈을 내어준 나의 마음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나는 오히려 내 호의를 알아주신 아주머니께 고마움을 느꼈다. 남을 도울 때 가장 덕을 보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최고의 행복을 얻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 좋은 글귀가 있지 않은가.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도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항상 좋은 끝이 있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날 따라 그 말이 잔잔하게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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