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만의 무죄…'이춘재 연쇄살인 누명' 故윤동일씨 재심 선고

무죄 선고한 재판부 "고인된 피고인의 명예 회복하길 바란다"

형 윤동기 씨 "동생도 이제는 떳떳한 마음으로 홀가분할 것"


'이춘재 연쇄살인' 9차 사건 범인으로 억울하게 구속 수사를 받다 풀려난 뒤 지병으로 숨진 고(故) 윤동일 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심 재판이 진행된 지 2년여 만이다.


30일 수원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정윤섭)는 윤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윤 씨의 친형인 윤동기 씨가 고인이 된 동생을 대신해 변호인과 함께 피고인석에 앉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 자백 진술과 피해자의 법정 진술을 보면, 피고인의 자백 진술은 임의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여서 증거능력이 없다"며 "피고인이 실제 저지르지 않은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자백 진술한 점을 비추어보면 자백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수사과정, 법정진술도 신빙성이 없다"며 "증거능력이 없거나 입증할 증거가 없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돼 무죄를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고인이 되신 피고인이 명예를 회복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앞서 검찰은 고 윤 씨에게 '무죄'를 구형하면서 "오랜 시간 고통받았을 피고인과 가족들에게 사죄한다"고 머리를 숙였다.


검찰은 "피해자 자백과 불법 행위가 있었음이 확인된 이상 피고인의 자백에 임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과거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을 범인으로 특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윤 씨는 19세였던 1990년 11월 15일 발생한 이춘재 연쇄살인 9차 사건 용의자로 불법 연행돼 가족과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잠 안 재우기, 뺨 맞기 등 고문을 당하며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다.


수사기관은 이후 그의 유전자(DNA)를 채취해 검사했고, 그 결과 9차 사건 범인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비슷한 시기 발생한 다른 강제추행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재차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으며, 1991년 수원지법으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윤 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지만 모두 기각돼 1992년 1심 판결이 확정됐다.


윤 씨는 석방 10개월 뒤 암 진단을 받고 1997년 9월 유명을 달리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춘재 연쇄살인'에 대한 경찰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공권력 행사, 사건 은폐 의혹 조사가 이뤄지는 등 "다수 용의자에 대해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2022년 12월 발표했다.


이날 무죄 선고 후 이춘재 8차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가 고 윤 씨의 친형 윤동기 씨에게 꽃다발을 건네기도 했다.


무죄 선고가 이루어진 후 "심정이 어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윤 씨의 친형 윤동기씨는 "(무죄 선고가 나왔을 때) 울컥했다"면서 "눈물이 좀 날 것 같았는데 참았다"며 35년 세월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오늘 무죄 선고가 났으니 동생도 떳떳한 마음으로 홀가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재심 사건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도 "너무 짧게 선고가 이뤄져 사건의 의미를 (사법부로부터) 듣지 못한 건 아쉽다"면서도 "오늘 무죄판결은 돌아가신 윤동일 씨의 명예를 되찾는 판결"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당시 사건 기록을 보면 (경찰의) 실적이 언급되는데 공권력이 실적을 앞세워 약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들은 (없어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수사과정의 절차가 좀 더 약자를 배려하고 인권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고 윤 씨 측은 지난 2023년 5월, 서울중앙지법에 5억 3000여만 원의 국가 배상 청구 소송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수사 과정의 위법은 오늘 판결로 밝혀졌다"며 "고 윤 씨가 이 사건으로 암 투병 등으로 일찍 숨졌다는 인과관계를 어떻게 입증해야 할지가 중요 쟁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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