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에서 보건·의료까지…트럼프는 왜 전문가를 싫어하나

혐오에 가까운 전문가 불신…보건·과학기술·외교·안보 등 분야 안 가려

'딥스테이트' 극우 음모론이 불신 키웠나…"위험한 집단사고 빠질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타이레놀을 자폐증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 직면한 가운데, 이 주장이 전문가 집단에 대한 트럼프의 불신을 드러내는 여러 사례 중 하나라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는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타이레놀 관련 연설에서 보건 당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나는 항상 자폐증과 그 발생 원인에 대해 매우 강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며 "공중보건 당국이 지나친 신중함으로 인해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폴리티코는 3명의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의 타이레놀 공격은 보건 당국에 대한 그의 불신을 반영했다고 보도했다. 의료계는 트럼프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자폐증 발병률 증가는 진단 기준 변화와 인식 제고 때문이라고 지적했지만 백악관 관계자들은 트럼프가 의료계의 주장을 전혀 신뢰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이 자폐증 문제를 방치했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보건·의료에서 외교·안보까지…분야 가리지 않는 트럼프의 전문가 불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표를 듣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이 아동 자폐증 급증과 개연성이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2025.09.22.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준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표를 듣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이 아동 자폐증 급증과 개연성이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트럼프의 전문가 불신은 그 뿌리는 매우 깊다. 혐오에 가까운 그의 전문가 불신은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연방 정부 규모 감축 움직임과 겹쳐 대규모 연방정부 공무원 해고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지난 8월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수전 모나레즈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을 해고했다. 이후 모나레즈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CDC 자문기구인 예방접종실무위원회(ACIP)가 발표할 예정이었던 새 백신 권고안에 서명하지 않으면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실제로 케네디 장관은 코로나19 백신 승인 대상을 고위험군으로 축소하고 백신 자문위를 전원 해임하며 연구비를 삭감하는 등 기존의 백신 정책에 역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

의료계 전문가뿐만 아니라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기후·해양·생물다양성 전문가들도 축출됐다. 국립기상청(NWS) 인력도 대거 줄어들어 일부 직원을 재고용해야 했다. 환경보호청(EPA)에서는 '기후', '그린 에너지'와 같은 용어가 모든 문서에서 삭제됐으며 국립과학재단(NSF)은 연구 프로젝트가 매달 중단되거나 사라져 연구자 고용 불안정이 확대되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국방부는 핵전략, '골든 돔' 등 미사일 방어체계, 중국의 해킹 대응 등의 사안을 다루던 위원회 등 총 14개의 자문위원회를 해체했다. 이에 따라 해임된 인사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직도 타격을 받았다. 트럼프는 NSC의 역할을 대통령에 대한 자문 기관에서 대통령의 결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축소했다. NSC는 지난 2016년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 2019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비리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으로 촉발된 탄핵 정국에서 트럼프에 불리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심을 트럼프와 그의 지지층으로부터 받아 왔다.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이민자를 추방한 근거와 모순되는 정보가 나오자, 각 정보기관의 정보 분석을 조율하는 국가정보위원회 의장 대행과 부의장을 해임하기도 했다.

극우 음모론이 전문가 불신 부추겨…"위험한 집단사고 빠질 수도"
'극우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가 2024년 9월 10일(현지시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이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간의 토론에 앞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모습. 2024.09.10. ⓒ 로이터=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극우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가 2024년 9월 10일(현지시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대통령 후보이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간의 토론에 앞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모습. 

 

이러한 전문가 집단 해임은 극우 논객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극우 진영은 정치인과 연방정부의 고위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해 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4월 트럼프는 극우 논객인 로라 루머(31)와 면담을 가진 지 하루 만에 NSC 고위 관계자 6명을 해임했다. 루머는 9·11 테러가 미국 정부 소행이라는 음모론을 퍼뜨려 우파 진영 내에서도 너무 과격한 음모론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자리에서 루머는 트럼프에 일부 NSC 관계자들이 충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해임할 것을 요구했다. 마이크 왈츠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은 뒤늦게 이를 만류했으나 해임을 막지 못했다.

이에 대해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근무한 H.R.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NYT에 "누군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1기 행정부에서의 경험을 근거로 자신의 참모진이 가장 큰 방해꾼이 될 것이라고 설득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NSC 인력 축소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관세 같은 일부 사안에서 달성하려는 목표를 명확히 하기 위해 필요한 '심의 과정'을 운영할 역량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초당파 성향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리처드 폰테인 소장은 전문가 집단 약화의 폐해 중 하나가 "집단사고와 편협한 사고방식"이라며 이것이 "어떤 정부에서도 위험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안팎의 다양한 출처에서 정보를 끌어와 외교 정책 결정권자들을 위한 견고한 선택지를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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