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박희옥] 새해, 또 다른 희망을 품는다

박희옥(서북미문인협회 회원)

 

새해, 또 다른 희망을 품는다

 

새 달력을 걸었다. 조금은 특별한 달력이다. 그동안 내가 사진으로 찍어놓은 음식 사진들을 모아 달력을 만들었다. 매우 서투르고 투박하고 생각처럼 예쁘지는 않았지만 설렜다. 마치 새해에는 나에게 가슴 떨리는 일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직 새해를 맞이하기에 시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서둘러 달력을 걸었다. 그리고 기념일마다 빨간 사인펜으로 표시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고 또 기억하기도 좋다. 요즘 같은 때에 달력이 촌스럽다고도 하겠지만 가끔은 옛날의 추억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를 위한 달력이다 보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다정함이 달력에 담겨있다. 가끔 찾아오는 아이들도 신기한지 달력을 주의 깊게 본다. 아마도 엄마의 새로운 출발을 그렇게 응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 한해는 유난히 짧았던 것 같다. 은퇴 후의 처음 맞는 한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벌써 은퇴한 지가 1년이 되어간다. 4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자유롭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도 있지만 시간의 공백은 가끔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이제야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더 이상 사회생활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허무함을 느낀 것도 잠깐,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은퇴 후에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요리학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요리 강좌를 들으면서 다양한 요리를 만들게 되었다. 같은 식재료라 하더라고 조리법에 따라 음식은 다르게 요리된다. 나는 5가지 음식 철학이 있다. 

일단은 쉽게 재료를 구해야 하고 또 재료가 비싸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조리법이 간단해서 누구나 쉽게 만들어야 하고 맛도 있어야 하지만 보기에도 예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담음새에 많은 신경을 쓰는 편이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 말처럼 같은 음식이라도 어떻게 접시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요리가 달라진다

요리하면서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식재료의 신선함과 계절감을 느끼고 건강한 식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도 요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알맞게 어우러져야 맛있는 요리가 되는 것처럼 서로 부딪치고 섞여야 좋은 인간관계가 되는 것 같다. 신기한 것은 서로 밀어내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익숙해지고 나야 익어가는 것이다. 요리하면서 얻은 것은 자신감이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요리가 이제는 나의 취미가 되었다, 새로운 레시피를 고민하고 실패를 통한 과정들이 나의 또 다른 삶의 여정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   

은퇴 후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내 삶의 소중한 경험이 되어가고 있다. 요리를 통한 행복은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임을 확신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만 하면 분란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을 강요한다면 마음의 평화를 느끼진 못할 것은 분명하다. 사람의 생각은 존재하는 인간만큼 많다. 그 많은 생각들을 다 인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주위 사람들의 생각만이라도 이해하고 인정하고 싶다. 모든 재료가 알맞게 익어야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새해가 된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참 좋은 것 같다.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며칠 만이라도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오르막길보다는 내리막길이 더 빠르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다. 그렇다고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살아간다는 일이 녹록지 않다는 것도 이미 알아버렸다. 그러나 그동안 겪어왔던 것이 저력이 되는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감당할 자신감은 나이 듦에서 오는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바로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지나간 세월이 귀하다.

새해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으면 좋겠다. 내일은 다를 것이라는 희망이 아직은 유효하기를 소망한다. 요리와 함께 익어가는 내 삶의 새해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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