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최인근 목사] 후회는 언제나 너무 늦습니다!

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후회는 언제나 너무 늦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임종을 경험해보았습니다.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이기에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 순간은 엄숙하고 무겁습니다. 그때 하는 마지막 말을 우리는 유언이라고 합니다. 그때의 그 유언은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권위를 가집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순간에 남기는 유언에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나온 삶을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더 사랑하지 못했던 일, 더 충성하지 못했던 일, 더 정직하고 바르게 살지 못했던 일 등 후회의 종류는 달라도 후회하는 것은 매일반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느끼는 심정은 같았습니다. 그 모든 후회는 이제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는 누구보다도 돈을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지 못한 채 그는 결국 스승이신 예수님도 은 30에 팔아넘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소중한 돈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그 같은 배신으로 끝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잔인하게 끌려가 죽으시는 것을 보고 엄청 후회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래서 스승도 팔고 받아 챙겼던 그 돈을 도로 갖다 주고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후회입니다. 이 세상에서 바람처럼 지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가장 허망한 것이 바로 후회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후회하게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미련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이렇게 후회하지 않도록 소중한 인생을 바로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을 또한 “지혜로운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열 처녀 비유가 있습니다. 다섯 처녀는 지혜롭고 나머지 다섯 처녀는 미련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삶이 지혜로울 수도 있고 미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 같은 비유를 통하여서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지혜롭다는 칭찬을 받기도 하고 미련하다는 책망을 받기도 하였을까요? 그 기준은 바로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처녀들이 한결 같이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지혜로운 처녀들은 등불과 기름을 동시에 준비하였으나 미련한 처녀들은 등불은 준비하였으나 그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마침내 신랑이 왔을 때 그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였습니다. 부랴부랴 기름을 준비하고 왔을 때는 이미 신랑이 신부를 맞아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난 뒤였습니다. 뒤늦게 기름을 준비하고 돌아왔으나 문은 이미 닫혔고 아무리 불러도 신랑은 두 번 다시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혼인잔치 집은 천국을 비유하는 것이고 등과 기름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처럼 혼인잔치 집의 문이 닫히듯이 생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때에 그 순간을 맞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로 그 엄숙한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처럼 미리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일컬어 “미련한 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 순간이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원수 맺고 등을 돌리며 망가뜨렸던 인간관계도 회복하고, 자식들에게 남겨 줄 유산도 유서를 만들어 확실하게 해 두고, 이 세상 떠나면 만나게 될 하나님을 만날 준비도 미리 잘 대비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 소용도 없는 후회 같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는 것 이상으로 죽는 것도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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