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문-이춘혜] 시애틀의 봄
- 23-07-10
이춘혜 시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시애틀의 봄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인 이춘혜 시인이 한국 웹진 <시산맥>에 게재된 여행 산문을 보내와 싣습니다.
저 멀리 캐스케이드 산맥의 정상에는 시리도록 새하얀 눈들이 한가득 쌓여 있지만, 스카지트 벨리 벌판은 3월초 인데도 벌써 만발한 수선화의 물결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보통 둔하디 둔한 내 가슴이 벅차올라 형형색색 꽃들의 황홀 감에 휩싸여 나도 모르는 사이 탄성을 내 지른다.
지난해 시애틀의 겨울은 지독히 춥고 눈도 많이 왔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워낙 눈이 많이 와서 백화점과 학교들도 문을 닫는 곳이 많았다.
제가 어느 날 교회를 가려는데 차가 빙글빙글 헛바퀴를 돌며 미끄러져 이웃 분들의 도움으로 겨우 갔지만, 돌아올 때는 교회 청년들이 삽으로 차 주위의 얼음과 눈을 치우고 나서야 겨우 차를 움직여 아슬아슬한 빙판길을 고생하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 겨울은 눈이 한번도 오지 않고 기온도 아주 높아 작년보다 한 달이나 일찍 시애틀에는 봄이 찾아 온 듯 서둘러 온갖 꽃들이 피어났다. 나는 괜스레 지천으로 핀 꽃들을 이리 저리 둘러 보며 어떤 꽃이 더욱 아름다운지 비교 해보며 이 꽃 저 꽃에 대고 향내를 맡는다. 순간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과 감사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들 말하기를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인한 이상기온이라고 말하지만, 지난 겨울 생각하면 지루하게 비만 주룩주룩 오던 겨울을 서둘러 끝내시고, 어둡던 마음 밭에 봄을 일찍 마련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같은 경기침체로 봄이 왔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도 없다지만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의 계절이다. 우리 삶 속의 겨울 같이 침체된 시련과 고난을 이기고 새로운 삶의 환희를 느끼며 소망과 용기를 갖는 약동의 계절이 봄인 것은 틀림없다.
특히 수선화와 튤립이 광활한 스카지트 벨리 벌판에서 추운 겨울의 고통을 이겨내고 새 봄에 희망의 새싹을 파릇파릇 틔워 결국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듯, 우리의 시련과 고통을 통해 믿음을 연단시키시고 정금보다 더 귀한 소망을 갖게 해 주시는 만유의 주재 되시는 분께 다시금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픈 마음이 들었다. 스카지트 벨리 벌판은 보통 3월에 수선화가 피고, 4월에 튤립이 피기 때문에 전국적으로(미국) 유명한 튤립 축제가 시작되는 곳이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겨울 날씨가 봄처럼 따뜻해서 한 달 가량 빠르게 수선화가 피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겨울 철새인 스노우구스 떼가 겨울이면 시베리아에서 스카지트 벨리 벌판으로 옮겨와 겨울을 지내고 봄엔 돌아 가는데 기온의 온난화 현상으로 봄을 만끽한 새들이 벌써 고향으로 돌아가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을 깨고 나타난 현실! 벌판이 마치 새하얀 눈으로 덮은 것처럼 수많은 셀 수조차 없는 새떼들이 굶주린 양, 분주하게 먹이를 쪼고 있었다. 수만 마리의 스노우 구스 떼가 동시에 하늘에 날아 올랐다가 다른 곳에 내릴 때의 장관은 마치, 새하얀 눈이 하늘에서 휘날리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마치 하늘로 오르는 흰 세마 포를 입은 순결 무구한 천사의 나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아와 시를 한 수 적었다.
군무 群舞
진흙같이 질펀한 세상
흡사 눈 덮인 광야처럼 하얗게 일렁이는 스카지트 벌판
이른 봄날, 수 많은 스노우 구스 떼들의 목울대 소리
하늘을 수놓던 새하얀 새떼들이
동시에 지천으로 벌판에 내려 앉은 그 장관!
그 화려하고 장엄한 군무에
보통 내 둔한 가슴이 벅차올라 넋을 잃었네
푸른 허공에 슬픔 한 덩어리 털 듯
힘차게 깃털을 턴 후
굶주려 분주히 먹이를 쪼아먹는 칼 같은 부리
맨 몸으로 눈길을 달구는
철새들은 나의 울음이었을까
가슴을 꽁꽁 얼린 강은 새를 품을 수 없기에
겨울이면 황량한 시베리아에서
스카지트 벌판으로 옮겨와 봄이면 돌아가는 철새들
어느 무용수의 춤사위가 저토록 아름다울 손가
감미로운 음악도 구령도 없이
일사 분란하게 열을 맞춰 차례로 비상하는 새떼들
마치 하늘로 오르는 순결무구 純潔無垢 한
흰 세마포를 입은 천사의 나래 같은
눈 감아도 피상으로 남는 환희의 춤사위
황혼 무렵, 벌판마저 노을 빛에 잠기면
울부짖던 새떼들 어디론가 날아가고
가슴 시린 내 일상의 고뇌도 사라지고
골짝너머 먼 하늘 부신 천국을 동경하며
그날까지, 나는 본향 떠난 나그네임을 새삼 자각했다.
황혼 무렵, 차창을 스치는 들판의 풍경을 보며 죄악 속에 찌든 내 일상의 고뇌는 사라지고 언젠가는 돌아 갈 천국을 기웃거리며 그날까지 나는 길 위로 나선 나그네임을 자각하며 차에 올랐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생의 벅찬 환희의 터질 듯한 함성이 메아리 쳤다.
**시애틀은 미국의 그 어느 곳보다 자연의 경관이 뛰어난 곳이 많고 살기 좋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인 인구만 해도 해마다 증가추세에 있는 것 같다. 워싱턴 주에 사는 한인인구가 18만에 육박 한다니 정말 놀랍다. 자연이 주는 기쁨은 순수하다. 아침 해가 뜨면 사라지는 이슬도 기쁨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도 하며 꽃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답던가요? 하늘을 날아가는 새의 자유로움! 자연은 우리에게 걱정과 기쁨을 주기도하고 경고도 한다. 항상 다니던 산길도 달빛이 빛을 잃은 밤에는 두렵고 폭설로 혹은 폭우로 마을 길이 막혔을 경우엔 가슴이 철렁하며, 걱정을 선사합니다.
**시애틀에는 애버 그린 시티가 있다. 사시사철 나무들이 빼곡히 숲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에 강과 호수와 바다가 인접해 있는 곳이 많아 경치가 좋고 살기 좋은 곳, 늘 푸르름이 넘쳐나는 곳, 하늘 향해 죽죽 뻗은 키가 큰 나무들이 어딜 가나 시원스런 자태를 자랑하듯 완성된 예술작품처럼 서 있다. 마치. 잘 생기고 늘씬한 미국 본토인들처럼. 이렇게 경치가 빼어난 시애틀에서 영화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 을 촬영 했다고 하여 보통 시애틀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들먹이며 자신이 시애틀에 온 것을 자랑삼아 말씀하시는 분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신이 빚은 대자연의 조각품, 사철 말없이 고고한 산처럼, 막힌 곳이 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낭만과 운치가 넘쳐나는 시애틀에서 탐닉하지 않는 초연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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