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김윤선] 꿈이 사는 집
- 21-06-14
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꿈이 사는 집
새해 벽두부터 웬 개꿈? 실은 어젯밤에 드라마를 보다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저 애는 예쁘지도 않은데 주연만 하네.”
곧바로 남편이 팬심을 드러냈다.
“연기를 잘하잖아, 노력파래.”
그렇기로 꿈에까지 찾아오다니. 생시에 한 말빚에 멋쩍어서 얼른 그녀에게 덕담했다.
“화면에서보다 훨씬 예뻐요.”
정말이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아무튼 그녀와 나는 차를 타고 함께 놀았다.
깨고 나니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다. 이 무슨 실없는 꿈인가. 게다가 요즘 내 눈을 즐겁게 하는 건 미녀들보다 미남들이다. 장동건, 얼마나 멋지냐? 현빈,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네. 나는 이런 꽃미남이 좋다. 꽃보다 남자, 아무튼 그런 드라마에 푹 빠져서 한참 동안 지냈다. 인생 선배들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야, 너거도 나이 들어봐라,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이 이뿌다,”
나는 잠을 깊이 자서인지 꿈을 잘 꾸지 않는다. 아버지, 엄마도 보고 싶고 형제들이 그리운데 말이다. 어릴 땐 꽤 꿈을 꾸었다. 전쟁하는 꿈을 곧잘 꾸었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도 꾸었다. 전쟁에서 선봉에 서면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죽지 않았다. 화살과 총알이 날 비껴갔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는데 어른들은 그맘때쯤 에 꾸는 키 크는 꿈이라 했다. 그 말을 들은 뒤엔 더 자주 꾸고 싶었는데 또래들과 나눠 꾸는 탓인지 욕심만큼 꾸지 못했다.
책상 앞에서도 곧잘 헛꿈을 꾸곤 했다. 저만치 밀쳐낸 책 사이로 에밀리 브론테가 되기도 하고, 펄 벅이 되기도 했으며, 퀴리 부인이 되기도 했다. 후딱 정신 차리고 보면 약오른 책들이 마음을 더 다급하게 할 뿐, 현실에서 필요한 건 꿈이 아니라 실천하는 행동이라는 걸 시험 점수가 곧바로 말해주었다.
요즘엔 많은 젊은이가 꿈이 없단다. 그게 어찌 그들만의 탓일까. 거기에 덧붙여 말한다. 자신의 꿈을 실현할 일을 찾으라고. 일자리의 상황이 그럴 처지가 되고 나서 할 말이다. 그러면 이런 말도 한다. 집 차고에서 사무실을 연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와 대학의 기숙사에서 페이스북을 창설한 저커버그를 들이댄다. 1%도 안되는 성공한 사람들을 내세워 꿈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버지는 어린 내게서 판사의 꿈을 꾸셨고, 어머닌 여자가 대학만 나오면 신데렐라가 되는 줄 아셨다. 어린 시절, 우리의 꿈은 대통령이었다. 그것이 불가능할 즈음엔 노벨상을 꿈꿨다. 참 허무맹랑한 욕심이었다. 하지만 꿈 아닌가. 대학 졸업 후엔 방충망처럼 가는 취업난을 뚫고 교사가 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고, 결혼 후엔 가족이 모여서 세끼 밥 먹고 사는 일에 바쁜 소시민이 됐다. 그러고 보니 철없을 때 그런 꿈이라도 꾸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다.
요즘은 꿈꾸는 게 두렵다. 성공보다 앞서 보이는 실패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신감 결여 때문인지 꿈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먼저 말하는 듯해서다. 그런데 어젯밤의 꿈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꾸고 난 뒤 입가에 웃음이 돌았던 걸 보면 나쁜 예지몽은 아니었으리라. 세상만사 그리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는 지금에 이르고 나니 세상 보는 눈을 새롭게 하라는 메시지인 듯도 싶고, 지금이라도 헛꿈을 꾸고 있다면 당장 깨어나라는 일침인 듯도 싶다.
어릴 때 꿈꾸는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상상하기를 즐긴다. 특히 글 쓰는 과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재를 찾고 제목을 정하고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끝을 맺고 중간에 어떤 이야기를 넣을까, 때로는 소리를 내고 때로는 향기를 내고 싶은 그 꿈을 나는 몇 번이나 헐고 짓곤 한다. 그러면서 젖어 드는 몰입의 순간들, 꿈이 꿈이라는 걸 알고 난 지금에도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쏟아지는 글자들이 어느새 나와 일체가 되어 춤을 춘다. 이따금 얼쑤, 추임새라도 넣다 보면 학춤이든 병 신 춤이든, 어쩜 그건 잃어버린 내 꿈을 조각 맞춰 나가는 일이 아닐까. 꿈이 사는 집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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