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SMR 시장 선점 나선 시애틀 테라파워…"韓기업과 협력 확대 도모"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

 

시애틀 테라파워 에버렛연구소…소듐냉각고속로 등 SMR 관련 실험장비 배치

2035년 SMR 시장 규모 400~600조원 전망…SK그룹, 테라파워에 3200억원 투자


스타벅스의 도시로 유명한 미 워싱턴주(州) 시애틀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30분가량을 달리자 한 연구소 시설에 도착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취재진들이 찾은 이곳은 차세대 원자력발전소(원전) 기술을 연구하는 테라파워 에버렛연구소였다. 이곳에 한국 취재진들이 방문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약 6611㎡(약 2000평) 규모의 격납창고식으로 지어진 건물 내부엔 테라파워가 미래의 원전 기술로 개발 중인 최첨단 '소형 모듈 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와 관련한 실험 장비들이 배치돼 있었다.

연구소 내부는 △테라파워가 소듐냉각고속로(SFR)에 용융염(molten salt·상온에서 고체인 염을 가열해 융해시킨 물질) 열저장설비(MSS)를 결합한 형태로 자체 개발 중인 SMR 제품인 '나트륨(Natrium)' 실험장비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악티늄-225' 생산설비 △또 다른 미래형 SMR로 꼽히는 '용융 염화물고속원자로(MCFR·Molten Chloride Fast Reactor)' 실험장비 등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테라파워 연구진들은 취재진들에게 나트륨 및 MCFR의 실험장비 및 가동원리 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가 하면 나트륨 원자로에 쓰이는 용융염인 '솔라 솔트(Solar Salt ·질산나트륨과 질산칼륨 혼합)'에 대해서도 소개하기도 했다. 태양열 저장을 위해 사용되는 솔라 솔트는 250~550도까지 안정적인 액체 형태를 유지하며, 500~550도에서 작동하는 나트륨 원자로의 열 에너지 저장 및 전달하는데 용이하다는 연구원들의 설명이었다.   

나트륨 원자로에 들어가는 핵연료 다발의 구조는 4각형인 경수로형과 달리 6각형 구조였다. 마이클 앤더슨 선임 관리자는 연료봉을 6각형 모양의 다발로 묶은 '핵연료 다발' 금속 모형을 놓고 "나트륨 원자로의 독특한 점인 일반적 레이아웃 구조"라며 "육각형 패턴으로 돼 있어 (연료봉을) 다 같이 적합하게 위치하도록 묶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료봉 주위를 감싸고 있는 와이어는 핵연료가 다발을 통과할 때 나트륨이 혼합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첨단 원전 기술을 연구하는 테라파워 직원은 모두 400여명으로 이 중 22%가 박사급 인력이라고 테라파워측은 밝혔다. 

그는 "소듐냉각고속로는 핵연료집합체들이 모두 서로 잘 맞도록 완벽한 육각형 패턴을 적용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연료봉 주위엔 와이어가 감싸고 있었다. 이 와이어는 핵연료가 집합체를 통과할 때 나트륨이 혼합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에버렛연구소에서 실시한 SMR 관련 각종 실험 데이터는 테라파워가 진행 중인 실증화 작업에 활용되며, 미 규제당국에도 제공된다고 한다.

마샤 버키 테라파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신기술을 개발할 때는 보통 시뮬레이션 영역에서 시작하지만, 라이선스(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실제 물리적 형태로 작동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면서 "이곳은 물리적 형태로 (기술을) 입증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빌 게이츠 설립한 테라파워, SMR 시장 선점 박차  

테라파워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지난 2008년 설립한 미국 원자로 설계 업체다. 현재 소듐냉각고속로를 중심으로 4세대 SMR을 개발 중이며, 실증 및 상업화 단지 구축계획을 공식화하고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FR은 고속중성자를 이용한 핵분열을 통해 발생한 열을 액체 소듐(Na) 냉각재로 전달하고 이 과정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전기를 생산한다.

테라파워는 미 에너지부(DOE)의 차세대 원자로 실증 프로그램(ARDP)의 일환으로 1단계 실증단지 구축 비용 40억 달러(약 5조1600억원)의 절반인 약 20억 달러(2조5800억원)를 지원받아 상업화 속도전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45메가와트(MW) 규모(최대출력 500MW)의 1단계 실증단지는 미 서부 와이오밍주(州)에 부지 선정을 완료해 건설 중으로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345MW는 약 25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이며, 최대 출력으로 보면 화력발전소 1기 발전용량(500MW)과 동일하다.  

테라파워는 또 지난 3월 미 유타주 퍼시피콥(PacifiCorp) 소유의 석탄화력발전소 부지에 2기(1000MW)의 SMR을 2033년까지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고, 테라파워와 퍼시피콥은 오는 2035년까지 미국내 상용 SMR 건설 후보지를 계속 물색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테라파워 에버렛연구소내 용융 염화물 고속 원자로(Molten Chloride Fast Reactor, MCFR) 개발을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용융 염화물 특성 테스트 장비(Integrated Effects Test, IET) 사진. 1MW 수준까지 외부에서 열을 가할 수 있는 Multiloop 시스템으로, 용융 염화물의 열 수력 및 안전 분석 검증에 활용할 예정이다. 사진은 테라파워 제공.
테라파워 에버렛연구소내 용융 염화물 고속 원자로(Molten Chloride Fast Reactor, MCFR) 개발을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용융 염화물 특성 테스트 장비(Integrated Effects Test, IET) 사진. 1MW 수준까지 외부에서 열을 가할 수 있는 Multiloop 시스템으로, 용융 염화물의 열 수력 및 안전 분석 검증에 활용할 예정이다. 사진은 테라파워 제공.


◇SMR, 경제성·안전성·지속가능성 부각…2035년 시장규모 400~600조원 전망

SMR은 대형 원전의 발전 용량과 크기를 줄인 500MW 이하 소형 원전으로, 주요 기기를 모듈화해 설계·제작할 수 있는 등 경제성과 안전성이 현재 가동 중인 3세대 원전에 비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SMR은 발전 과정에 탄소 배출이 없어 '지속가능성'도 장점으로 부각된다.  

특히 핵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외부 전원없이 자연냉각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정전 등 비상상황 발생시에도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크게 낮춘다.

현재 테라파워가 추진 중인 '나트륨' 프로젝트는 핵 연료봉 수명을 기존(2년)보다 5배가 긴 10년을 목표로 하고 있는 등 핵 폐기물을 기존보다 70%가량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지 않은 만큼 오염수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SMR은 또 소형화·모듈화를 통해 전력 수요지 인근에 설치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40년까지 SMR 시장이 연평균 22%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영국 국가원자력연구원(NNL)은 2035년 SMR 시장규모가 약 400~600조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MR은 현재 미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영국과 프랑스, 일본, 중국, 한국 등이 기술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현재 70종 이상의 SMR이 개발 중이다.

대형 원전은 냉각재와 감속재로 '물'을 사용하는 경수로 위주의 개발이 주였다면 현재 개발중인 SMR 가압경수로형인 3.5세대와 비(非)경수로형이 주축인 4세대로 구분된다.

3.5세대 SMR은 냉각·감속재로 물을 사용하는 등 기존 대형 원전에서 검증된 경수로 기반 기술인 만큼 기술 안정성이 높아 인허가 획득과 건설 난이도 측면에서 4세대에 비해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기존 대형 원전과 마찬가지로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4세대 SMR은 냉각·감속재로 금속과 기체, 용융염 등 물이 아닌 다른 물질을 사용한다. 냉각재나 노형 소재에 따라 SFR, 용융염원자로(MSR), 가스냉각고속로(GFR), 초고온가스로(VHTR) 등으로 구분된다. 사용후 핵연료가 경수로 유형보단 10분의1 수준까지 적게 발생한다는 장점이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CEO,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오른쪽부터)이 지난 4월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메디슨호텔에서 열린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 및 사업화를 위한 상호 협력 계약’ 체결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SK이노베이션 제공) © News1 한재준 기자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CEO,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오른쪽부터)이 지난 4월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메디슨호텔에서 열린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 및 사업화를 위한 상호 협력 계약’ 체결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SK이노베이션 제공) © News1 한재준 기자


◇테라파워, 韓기업과 협력 강화…SK, 공동 선도투자자 지위 확보

SMR 시장 패권 경쟁에 나선 테라파워는 현재 SK그룹과 HD현대 등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그룹과의 협력은 눈길을 끌고 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8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승인을 받아 테라파워에 2억5000만 달러(약 3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완료해, 현재 빌 게이츠와 함께 공동 선도투자자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상태다.

테라파워는 지난 4월 SK㈜와 SK이노베이션, 한국수력원자력과 4자간 '차세대 원전 개발 및 사업화를 위한 상호 협력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계약엔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SMR '나트륨'의 상용 원자로 개발을 위한 협력 내용이 담겨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접견, 자사가 개발 중인 SMR 기술과 향후 계획 등을 소개하고 한국 기업과의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르베크 CEO는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한국 기업들은 테라파워와 대대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며 "우리는 혁신기업이고, 나트륨 첫 프로젝트를 실행 중에 있다. 그래서 파트너도, 추가 투자도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SK와 HD현대와 같은 훌륭한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저희는 함께 사업을 확대시켜나갈 파트너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의 한수원은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안전한 원전 제공에 있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한국 원자력 산업의 역량강화를 통해 원자력 규모의 확대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악티늄-225'도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대상으로 꼽힌다.

'악티늄-225'는 정상 세포 손상을 최소화하며 암세포를 표적·파괴하는 표적 치료제 중 알파치료제의 원료로, 기존 베타치료제 대비 약물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르베크 CEO는 "우리는 원자로 및 핵의학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 기회가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제약회사와의 협업은 SK와 함께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관계자는 "테라파워와 협력을 통해 SMR 사업 뿐만 아니라 치료제 개발·위탁생산 등 영역에서도 다양한 사업기회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