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무엇을 입을까

이 에스더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무엇을 입을까


사월엔 텍사스의 초원이 들꽃을 덧입는다. 파스텔 가루를 흩뿌려 놓은 듯 들꽃들이 꽃바람을 일으키며 넓은 들판을 가로지른다. 가는 곳마다 눈웃음치던 꽃들이 어느새 씨앗을 날렸는지 내 안에서 뿌리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꽃 나들잇길, 마음이 저만치 앞서간다. 한 시간 남짓 달려 이글스 캐니언(Canyon of the Eagles)에 도착했다. 인디언 페인트 브러시, 텍사스 스타, 나이트 올리브가 무리 지어 꽃물결을 이루고, 노란 나비들이 날갯짓하며 졸고 있는 꽃들을 간질인다. 나른하게 흐르는 콜로라도 강물 위로 물새들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다. 야트막한 산 능선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어디를 둘러봐도 그림이다.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어 인물은 작고 배경은 크게 잡아달라고 동행에게 이르고는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다가갈수록 내가 자연의 풍경을 해치는 것 같아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몸을 낮춰 들꽃과 눈을 맞춘다.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는 풀꽃 시인이 떠오른다. 들꽃은 오래 보지 않아도,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마냥 사랑스럽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하얀 옷자락에 파랑, 노랑, 분홍, 주홍의 꽃이 새겨지는 것 같다. 어떤 명품이 이 꽃만큼 아름다울까. 세상에서 가장 큰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도 들꽃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입진 못했다지. 

요즘 부쩍 옷 걱정이 늘었다. 몸에 맞는 옷이 점점 줄어드는 탓이다. 뱃살과의 씨름을 포기하고 옷장을 정리했더니 외출할 때마다 옷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살 수도 없으니 머릿속만 어수선하다. 때와 장소에 맞춰 디자인과 색상이 절로 바뀌는 옷이 없을까. 매직 쇼처럼 한 번씩 돌 때마다 옷이 바뀌는 재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온갖 상상을 하다가 벌거숭이 임금님에게까지 생각이 미친다. 만일 나도 그 임금님처럼 옷장 가득 옷이 많아진다면 정말 걱정이 없을까. 

옷은 그저 깨끗하고 단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우기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내적 아름다움 운운했던 건 순전히 외모를 가꾸는데 게으른 습성과 욕심껏 옷장을 채우지 못하는 옹색한 처지를 감추기 위한 구차한 변명일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떠나보낸 옷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갓 태어나서 입은 배냇저고리는 물론 예닐곱 살 적 뽐내며 입었던 주황색 나팔바지와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이 살아 있는 노란 원피스와 빨간 구두, 그리고 흰 스타킹. 나는 얼마나 많은 옷을 입고 벗으며 여기까지 이르렀을까. 

돌아보면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특별한 옷을 입었다. 한 남자와 연을 맺던 날엔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첫아이를 안았던 날엔 임부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 옷을 입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되곤 했다. 그건 나의 의지대로 입고 벗을 수 없는,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 당신의 시간표에 맞춰 입혀 주신 옷이었다. 때를 따라 입은 그 옷들은 바로 내가 지켜야 할 삶의 자리였던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를 위해 지어 주신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소중히 여기며 잘 입어야겠다.

블루 보닛이 일으키는 바람을 맞으며 파란색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딸들에게 들꽃 무늬 원피스를 나란히 입혀 주면 참 고울 것 같다. 언젠가 큰딸이 드레스를 차려입고 한껏 파티를 즐기고 있는데, 아이가 안기더니 딸의 옷에다 실례를 했다. 울상을 짓고 나간 딸이 다시 돌아왔을 땐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었다. 그때 딸도 알아차렸을까. 젖은 드레스는 벗을 수 있지만 엄마라는 옷은 결코 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엄마 옷의 폭이 얼마나 넓어야 하는지 지금쯤 깨우쳤을까. 

꽃물 든 마음을 챙겨 집으로 오면서 들꽃의 꽃말을 찾아본다. 풀잎 끝에 피어난 희망들이, 신뢰와 평화가, 용기와 꿈들이 작은 꽃으로 피어나 넓은 평원을 촘촘히 채우고 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여름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들꽃의 꽃말이 위로와 격려가 될 것 같다. 선인장만 있는 줄 알았던 텍사스에서 들꽃을 보며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갖는다.

오월이면 텍사스엔 여름이 시작된다. 슬슬 여름 채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깊숙이 두었던 삼베 이불을 꺼내고 남편의 모시옷에 풀도 먹여야겠다. 처음 맞는 텍사스의 여름에 행여 데일까 걱정되지만, 시원한 들꽃 바람으로 적삼 몇 벌 삼아 좋은 이들과 나눠 입으면 불같은 더위도 잘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노을이 꽃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곱다. 들꽃처럼 낮게 살면 나도 저런 옷 한 벌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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