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경제부흥 꿈꾸는 영국…브렉시트로 꺼진 성장동력 회복할까

AI 정상회의 개최하고 안보리 안건 상정…"동맹국과 AI 혁신 선도하겠다"

9년간 4조원 투자해 AI 경쟁력 4위 안착…친기업 정책에 노동계 반발도


"역사적으로 영국은 몇 번이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신기술을 발명해 왔고 인류를 위해 이를 활용했다. 인공지능(AI)에 대한 방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동맹국들과 함께 이러한 혁신을 선도하겠다."

지난 6월 영국 총리실이 세계 최초로 AI를 주제로 한 정상회의를 오는 11월 개최하겠다며 발표한 성명의 일부분이다. 당시 방미길에 오른 리시 수낵 총리는 '중견국 영국이 AI 외교를 주도하는 게 현실적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방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면 영국보다 AI에 더 많은 전문성과 인재를 보유한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 이후 쇠퇴하던 영국이 AI를 발판 삼아 경제 부흥을 꿈꾸고 있다. 친기업 정책으로 글로벌 AI 기업들은 육성하는 한편 자국에서 AI 정상회의를 열어 공동의 접근방식을 도출하기로 하면서다. EU가 AI 규제에 속도를 높이지만 영국은 브렉시트로 EU 영향에서 벗어난 상황을 활용해 미래 먹거리인 AI 산업을 키우기로 했다. 그럼에도 영국 국민들 사이에선 AI에 의한 대량실업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1월 사상첫 AI 정상회의 영국서 개최…규칙 확립·표준 선점하겠단 포석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AI 정상회의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정상회의는 오는 11월 1일부터 1박2일간 영국 버킹엄셔주 블레츨리 파크에서 열리며 AI의 안전한 개발에 필요한 규제 가드레일이 중점적으로 논의된다. 블레츨리 파크는 영국 컴퓨터공학의 발상지로 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한 곳이다. 

카멜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각국 정상급 인사와 함께 샘 알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 등 AI 업계 수장, 시민사회 대표가 이번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영국이 AI 관련 논의에 적극적인 건 자국 주도로 규칙을 확립하고 업계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영국은 지난 7월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 자격으로 AI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해 안보리 사상 처음으로 관련 논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영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AI를 다루는 정상급 회의체가 연례 또는 격년으로 개최되길 기대하고 있다.

◇친기업 정책으로 오픈AI·딥마인드 유치…규제로 일관한 EU와 차별화 

영국은 AI 산업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데이터 분석업체 토터스인텔리전스가 지난 6월 공개한 '제4차 글로벌 AI 지수'에서 영국은 올해 미국(1위) 중국(2위) 싱가포르(3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영국이 최근 10년간 기업들로부터 유치한 AI 관련 투자액만 129억달러(약 17조원)로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많았다.

이는 영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투자한 결과로 풀이된다. 영국 과학혁신기술부의 지난 3월 집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2014년부터 9년간 AI 분야에 25억파운드(약 4조원)를 투자했다. 여기에 더해 수낵 총리는 지난 3월 2030년까지 3억7000만파운드(약 6100억원)를 AI 연구개발(R&D)에 추가로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EU와 달리 기업 친화적인 영국의 AI 산업 환경도 투자자들이 영국을 주목하는 이유다. 영국 경쟁시장국은 지난달 18일 AI 규제를 위한 7가지 원칙을 발표했는데, AI 혁신을 가로막는 기업의 독과점과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지난 6월 세계 최초의 AI 규제 법안을 통과시킨 EU와는 규제 목적과 성격이 상이하다.

지난 3월 발간한 AI 백서에는 영국 정부의 친기업 입장이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다. AI 규제기관을 별도 설립하는 방안에 대해 정부는 "기업에 부담을 줘 AI 혁신과 대응 능력을 저해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지난 6월 첫 해외사무소를 영국 런던에 설립했다. 이 외에도 구글의 AI연구소 딥마인드와 AI스타트업 앤트로픽이 본사를 런던에 두고 있다.

◇제조업→금융업 재편한 대처처럼…국부 증대하지만 대량실업 발생할 수도

그러나 영국 근로자들 사이에선 국가 전략산업이 AI로 기우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과학자, 엔지니어로 구성된 영국 프로스펙트 노조가 지난 4월 영국 국적의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8%는 일자리 보호를 위해 AI 규제 입법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AI 자동화로 인한 혜택이 부작용보다 크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12%에 그쳤다.

미국계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도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AI 기술을 산업 전반에 도입하면 최대 3억개의 일자리가 자동화되는 등 노동시장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한다고 내다봤다. AI 기술이 생산성을 대폭 향상해 향후 10년 동안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을 연간 7%, 7조달러(약 9400억원)씩 높이는 대신 상당수 사무 직종을 위협할 것이란 분석이었다.

영국 국민들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국가 기간 산업을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나라의 부는 늘어난 반면 근로자들은 대규모 실직으로 고통받은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수낵 총리가 AI 산업 육성에만 몰두하고 일자리 보호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한다면 근로자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올 여름 미국에선 할리우드 작가노조와 배우노조가 AI에 의한 대본작성과 딥페이크(deep fake) 얼굴 합성 문제로 63년만에 동반 파업을 벌인 바 있다. 유럽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는 지난 6월 편집업무 상당수를 생성형 AI로 대체해 전체 인력의 20%를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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