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공순해] 치과행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치과행

 

치과에 처음 가 본 건 24살 때다. 교통사고로 이가 부서져 도리가 없었다. 그 경험은 이쑤시개 꽂히듯 기억에 콱 박혔다. 의사의 손에서 나던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이를 갈아냈기에 뼈 타는 냄새와 니코틴 냄새가 섞여 입속에 시체가 쌓이는 것만 같았다. 지옥(?)에서 겨우 빠져나온 뒤 다신 치과에 안 가리라 작심했다.

아무리 작심해도 피할 수 없는 곳이 병원이다. 산부인과에서도 절대 다시 오지 않으리라 이 악물었지만 이곳도 피할 수 없는 곳. 본능적으로 변한 짐승이 곧바로 모성으로 변모하는 신기한 장소가 그곳이었다. 불가사의한 경험이었다. 모성을 성스럽다 예술로 승화하는 작가도 있다.

웬만해선 병원엘 가지 않는다. 되도록 식품의 회복력에 의지한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병원엘 가면 의사의 진단은 번번이 별 이상 없다, 스트레스 탓이다, 오렌지 주스 많이 마시고 쉬며 지켜 보자가 전부다. 이런 진단은 나도 한다. 진료비만 날린 셈. 내 증상은 내가 젤 잘 안다. 혈압과 혈당도 식품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신체가 치유와 회복의 탄력성을 가지고 있을 때까지였다. 생의 반환점을 돌자 친구처럼 질병이 줄 서 찾아왔다. 첫 친구는 눈에서 왔다. 55세 이래 안과 정기 검진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시력 저하의 주범인 안구건조증은 의사의 도움도 많이 받았으나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은 결국 자신이 찾아냈다. 녹내장 백내장은 의술의 힘을 빌었다. 

주변의 백내장 수술 경험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잠깐 사이 수술이 끝나고 경과도 좋다고.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실제로 해 본 바에 의하면 그것도 수술은 수술이었다. 우선 수술대에 오르기 전 마취도 했다. 마취란 잠시 세상을 떠난 상태 아닌가. 게다 미국 의료진들은 왜 그리 주사 놓기에 서툰지. 부풀어 올라 눈에 뻔히 보이는 정맥을 찌르고 또 찌르고, 혈관이 터지고야 겨우 바늘을 꽂았다. 멍 자국이 3주를 갔다. 

시술 전에 선택할 사안도 있었다. 컴퓨터 거리 시력, 원거리 시력, 근거리 시력,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어느 게 좋은지 몰라, 안경이라도 벗자 싶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컴퓨터 거리 시력을 골랐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원거리 시력을 가장 많이 선택한단다. 후회했으나 시술은 끝난 뒤. 또 어려움은 수술 결과가 안정될 때까지 안대를 해야 했고, 세수조차 맘 놓고 할 수 없었다. 물론 머리 감기도 안 됐다. 의사가 허락한 뒤에야 겨우 일상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열흘쯤은 일상이 멈추는 게 백내장 수술이었다. 그리고 빛이 반사되는 어디에서나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컴퓨터 앞에선 블루 라이트 차단 안경을 착용해야 했다. 이래저래 안경은 필수였던 걸. 무지하게 아무것도 몰라서 졸지 간에 당한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경험자들에게 후일담을 꼼꼼하게 들어둬야 하는 거구나, 깨달았지만 다 지나간 일. 이게 그 쉽다는 백내장 수술인가. 어느 수술이건 쉬운 건 없다. 

다 지나간 일은 치과에서도 있었다. 60세 생일 전 주, 땅콩 먹다 어금니가 나갔다. 그 무렵 치열이 변해 우울하던 차였기에 의사에게 말했더니 여성의 노년엔 다 그렇다고 웃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의사는 그럼 사전 대비할 수도 있지 않을까. 40대로 보이는 그 여의사가 좀 얄미웠다.

근래 도넛을 먹다 아랫니가 솟구쳤다. 이러다간 죽 먹다가도 이가 망가지겠네. 한숨과 함께 다시 치과행을 감행해야 했다. 의사는 임플란트를 권했다. 시술에 넉 달이 걸렸다. 그 넉 달 동안 윗니들이 빈 공간 안에서 저희 맘대로 놀아났다. 건치 미인이란 말도 있건만, 이건 치아 추녀가 아닌가. 더욱 망가진 치열에 다시 한숨을 쉬었더니 며느리 하는 말이 요즘은 그걸 예방하기 위해 치열을 고정하는 장치를 하기도 한단다. 뭐? 그럼 의사들이 그걸 말해줬어야지. 튀어나오는 말을 겨우 참았다. 의사의 직무 유기였다. 

남 탓하면 뭐 하랴. 죽어라 병원을 피한 내 탓 해야지. 20대에 만났던 치과 의사가 니코틴 냄새만 그리 풍기지 않았어도 그토록 기피하진 않았을 터인데… 요즘엔 기술이 발달해 치과 치료도 전 같지 않다. 이를 갈아내도 입안에 적어도 시체 쌓이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날로 현대화해 가는 세상 속에 홀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시대로 돌아간 기분, 왕따당한 이 기분. 비행기라며 익룡의 날개를 붙잡고 날아가던 만화는 재미나 있지. 원시인이 된 듯한 이 쓸쓸함을 어쩌랴. 이승윤의 <코미디여, 오소서>나 들어야 할까. 그는 삶은 코미디, 가끔은 하모니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펴 놓고 읽는다.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탄식이 나오기 전 아직 성할 때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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