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문해성] 거울 앞에서
- 22-10-03
문해성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거울 앞에서
매일 보던 얼굴이 오늘따라 낯설다. 웃어봤다가, 찡그려봤다가, 눈을 크게 뜨기도 하고 윙크도 해본다. 요 며칠 거울 앞에 자주 섰다. 거울에 비친 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일까. 갑자기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자기 몸인데 모를 리 있어? 이 믿음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난생처음 응급실을 찾았다.
여기가 응급실 접수처가 맞나 싶다. 응급실이니 다급해서 온 사람들일 텐데 많아도 너무 많다. 평소에는 아픈 사람이 보이지 않다가도 병원에 오면 왜 그렇게 환자가 많은지. 긴 줄 앞에서 더디기만 해 보이는 접수창구를 원망한다. 뇌출혈이면 시간을 다투는 상황인데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야 언제 의사를 보겠느냐고 남편이 투덜댄다. 구급차를 불렀어야 했나.
조바심 내는 남편을 보면서 정말 뇌출혈이면 어떻게 할까. 덩달아 겁이 난다. 불편해진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린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내게 찾아왔지. 요즘 몸무게가 많이 늘기는 했는데 설마 그래서?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의사는 한쪽 발로 서보게 하고, 두 팔을 올리게 하고, 눈을 감아 보라고도 했다. 그리고 피검사와 혹시 모르니 CT 촬영도 해보자고 했다. 다행히 뇌출혈은 아니고 안면마비란다. 확실한 원인은 모르지만,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염증을 일으켜 근육이 작동하지 않아 생긴 병이라고 했다.
의사의 말로는 완전히 돌아오는데 2주에서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1주일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의사의 다음 말이 무서웠다. 잠잘 때 눈이 감기지 않을지도 모르니 거즈와 테이프를 이용하란다. 처음에 의사가 눈을 감아 보라고 했는데 내 눈이 감기지 않은 모양이다. 거울을 보니 입도 많이 돌아가 있었다.
유독 더웠던 지난 일주일간 밤새도록 에어컨을 켜고 잤다. 혹시 찬 바람을 너무 많이 쐐서? 전에 한국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잤다가 아침에 입이 돌아갔다는 이웃 이야기가 생각났다. 의사에게 에어컨 바람이 원인일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관계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원인이 에어컨 바람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 쪽으로 향하던 에어컨 바람의 방향을 바꿨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찾아왔는지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했다. 죄지은 사람처럼 마음이 약해져만 갔다. 그러나 대부분 병은 원인도 모르게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던가. 누가 그런 병이 나에게는 절대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증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밤에 양치질하는데 물이 옆으로 흘렀다. 거울을 보았다. 한쪽 눈이 빨갛게 부어 보였다. 평소와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마시는데 입술에 감각이 없었다. 치과 치료 후 마취가 덜 풀린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남편에게 어젯밤부터의 증세를 설명했더니 당장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나는 주말이 지나고 가자며 병원 가기를 망설였다. 남편은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뇌출혈일지도 모른다며 바로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뇌출혈이란 말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언젠가 과학기술이 발달해 우리 몸도 거울을 보듯 유전자와 세포를 모두 스캔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몸에서 병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는 일찍 찾아내서 없애고, 오래돼서 낡은 부분은 갈아 끼우며 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인간의 수명이 100년이 아니라 200년쯤, 아니 500년 이상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먼 미래세대의 이야기다. 지금은 길어야 백 년 남짓인 생을 건강하게 살아내는 게 바람이다.
거울을 본다. 다행히 의사가 말한 것보다 빨리 회복된 것 같다. 10일 만에 정상으로 돌아온 걸 보면 약의 효능이 놀랍다. 아프고 난 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만약 거울이 없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답답하다. 눈이 있어도 본인의 얼굴은 볼 수 없다. 다 알 것 같은 자기 몸도 때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채기 힘들다. 형체도 없는 마음은 난해 시를 읽는 것 같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남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한탄한 적이 많다. 거울 속 나에게 주문을 외우듯 말한다. 돌아온 얼굴처럼 내 마음속 생각도 늘 반듯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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