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회백] 내가 겪은 4ㆍ19

이회백 의사(머서 아일랜드 거주)

 

내가 겪은 4ㆍ19


1960년 4월19일 나는 서울의대 졸업반이었고 임상 실습중이었다. 그 전날인 4월18일에 고려대 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대대적인 데모를 벌였다. 

실습중이었던 나는 고려대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싸우는데 서울대는 뭐하는가 하는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 곳곳에서 데모가 벌어진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가운을 벗어 던지고 대학병원을 나와 종로로 향했다. 거리는 시위대로 꽉 차 있었다. 종로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광화문쪽으로 걸어가 종로와 광화문이 마주치는 곳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일부 시위대는 왼쪽으로 돌아 국회의사당으로 향했고, 나머지는 오른쪽으로 돌아 중앙청으로 향했다. 

나는 ‘모든 게 이승만 탓이니 그가 있는 경무대(경무대가 청와대로 이름이 바꿘 것은 4ㆍ19후 유보선 대통령 때다)로 가서 따지는게 마땅하다’고 생각해 중앙청쪽을 선택했다. 중앙청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북쪽으로 향했다. 

이때 군중이 잡아 탄 전차가 경무대로 가는 앞장을 섰다. 북으로 향하던 군중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경무대 쪽으로 향했다. 

나도 거기에 끼어 경무대 정문을 바라보고 가던 중 갑자기 콩 볶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내 앞에 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쓰러졌다. 당황하고 얼떨떨해 우물거리는 사이 내 오른쪽 무릎이 따끔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쓰러지고 말았다.

경무대로 향하던 군중들이 뒤로 돌아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쓰러진 나를 일으켜 두 사람이 내 양쪽 팔을 어깨에 메고 민가로 들어갔다. 놀란 집주인이 자기 집 마당으로 들어오는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데 나는 집주인을 보자마가 한 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신문에서 자주 봤던 법무부 장관 이 인(李 仁)이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택시를 잡아왔다. 그 택시를 타고 대학 병원으로 향해 도착했다.

X-ray 실에 가 다리 사진을 찍고는 즉시 수술실로 옮겨졌다. 한참 있다 담당 의사가 와서 “수술은 할 필요가 없으니 병실로 옮기라”하고는 “총알이 관절 사이로 지나가 무릎이 어떻게 될지 관찰해야겠다”고 하고선 X-ray를 들고 나갔다.  

그러는 동안 내 동기생들은 실습하던 하얀 가운을 그대로 입고 단가를 들고 시위 부상자를 싣고 왔는데 이 사진이 크게 신문에 보도되었다. 내가 총상을 당하고 병실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동기생들이 내 방에 몰려왔다.

내가 입원한 지 며칠째였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간호원장이 병실을 돌아다니며 “이승만 대통령이 부상자를 위문하러오니 준비하라”고 말하고 나갔다. 

여러 사람이 복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할 말을 잔뜩 ‘준비’ 하고 있었다.“당신 물러나시오!”… 

그런데 이승만은 나타나지 않고  다시 병동이 조용해졌다. 몇명이나 부상자를 ‘위로’하고 갔는 지는 모르겠으나 내 방에는 나타나지 않고 사라졌다.

 “이런 죽일 놈이…”하는 욕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총부리를 쥐고 있는 군인들을 향해 “우리 형님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마세요”라고 국민학교 꼬마들이 울부짖었다.

이승만은 여러 날 물러나라는 국민의 요구에 침묵을 지키더니 미국 대사 John Muccio가 경무대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날 “국민이 원한다면…”하는 말을 남기고 미군 군용기를 타고 하와이로 도망쳤다. 그가 지나가는 길가에 줄을 서서 눈물을 흘리는 여인들을 뒤로 하고.

내 병실에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까지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서울대 교환교수로 와 있던 Glenn D. Paige 교수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승만 박사 말고 누가 있소. 뭐니뭐니 해도 이승만 밖에는”하고 열을 올리는 동기도 있었다.

4ㆍ19 보상금인가 뭔가 하는 것도 왔다. 나는 전부 사상계에 기부했다. 

대학교 학생 ‘지도자’중에는 정치에 입문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 그리고 시민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심지어 거리 청소까지 말끔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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