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진 배우 현빈(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News1>
(서울=뉴스1) 유기림 기자 = "좋아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됐고 일로서 할 때가 조금씩 커나갔던 것 같아요. (군대라는) 이 일을 못하는 환경에 들어와 있으니까 소중함을 알게 됐죠. 좋아했던 걸 다시 찾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역린'이 남달라요. 그런 느낌을 되새기고 처음 임한 작품이어서 다른 거죠. 제가 원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찾은 첫 현장이었어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현빈(32)은 좀 더 마른 모습이었다. 새삼 연기의 소중함을 느끼고 영화 '역린' 촬영 현장에 군 제대 후 복귀한 현빈이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조선왕조실록의 정조 부분도 읽고 팬들이 보내준 정조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다. 대본대로 '세밀한 등근육'을 만들려 3~4개월 동안 식단 조절과 운동을 병행했다.
기록상 문무에 능했던 정조를 "더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2개월간 승마, 활쏘기, 검술 등을 동시에 연습했다. 촬영 다음날 반나절 이상 이마에 파여 있는 상투 자국의 불편함도 견뎠다. "기본적인 사극톤을 원하지 않은" 이재규 감독의 요구대로 사극톤도 신경썼다.
'역린'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역린'에는 상책(정재영 분)의 입을 통해 중용 23번째장을 인용한 명대사가 나온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저도 지치고 힘들 때 중용 문구를 생각하면 희한하게 힘이 생기더라구요. 많은 분들이 이 말을 가슴에 새기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게 되면 많은 것들이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굴살이 쏙 빠질 정도로 노력한 현빈의 정성은 통했다. '역린'은 지난 4월30일 개봉한 이래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12일에는 누적관객수 328만4697명을 기록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많은 분들이 영화에 관심을 갖고 계시고 영화를 보러와주시니까 무대 인사 다닐 때 기분이 되게 좋아요. 9일 동안 100번이 넘는 무대인사를 다니며 3만여명을 만났어요. 그때마다 다 객석을 채워주셨어요. 여러 번 '역린'을 보신 분들도 계셨구요. 힘을 많이 얻었죠."
이 같은 흥행에 현빈의 등근육이 등장한 장면이 일조했다고 보는지 묻자 그는 "없지는 않은 것 같다"고 수긍했다. 그는 "초반 티저 영상이 나갈 때부터 반응들이 있었으니 (영향이) 없다고는 얘기 못한다"면서도 "등근육은 정조가 얼마나 처절하고 철저하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려는 하나의 형태였는데 현빈 개인의 몸처럼 보일까봐 우려했던 장면 중 하나"라고 털어놨다.
호평받은 등근육과 달리 '역린'은 언론시사회 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는 이유 등으로 연이어 혹평을 받았다. 현빈은 혹평을 두고 "억울하다기보다 속상한 부분이 당연히 있다"며 "관객 분들이 직접 보시고 판단하는 게 맞는데 많은 분들이 점점 더 좋게 들 봐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역린'이 정조의 이야기로 알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이 영화는 정유역변이 일어난 날에 있던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에요. 각 캐릭터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 보시는 분들은 많은 사람들과 내용이 나오다 보니까 좋은 부분들을 못 보시는 분들이 꽤 계신 것 같더라구요. 만약에 또 볼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역린'을 한두번 더 봐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역린'을 한번 보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반대파인 노론까지 품에 안은 정조라는 인간의 깊이다. "자기 사람들에게 하는 모습,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 속 모습 등 인간 정조를 많이 보여주려 했다"는 현빈은 "정조는 대단한 왕"이라고 언급했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죽게 한 노론을 숙청하지 않고 손잡은 것은) 용서가 될 수도 있고 자기가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왕의 노여움을 뜻하는) '역린'이라는 말 그대로 정조가 (반대파를) 단칼에 자를 수도 있는데 10년 넘게 버텼더라구요. 사람이 어떤 기분이나 상황을 30분도 참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봐요. 저였으면 용서하기 힘들 듯해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진 배우 현빈(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News1
인터뷰 내내 조용함과 차분함을 잃지 않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간 현빈의 얼굴에 정조가 살짝 어른거렸다. 이미 '역린'에 함께 출연한 배우 정재영으로부터 "어른스럽고 정조 같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올바르게 자란 스타일인 듯하다"는 평가를 받은 터였다. 이에 현빈은 웃으며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제가 정조 같진 않아요. (웃음) 가정교육은 잘 받은 것 같아요. 어른스럽다는 점에서 부모님의 영향도 있겠지만 일을 하면서 선배님들과 어울리는 시간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동생들보다 선배님들이 많으니까요."
"부모님이 잘 가르쳐 주신 것 같다"는 현빈은 그와 같은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도 갖고 있다. 그는 "결혼은 내 삶을 바꾸는 부분이기에 중요하다"며 현모양처 스타일인 자신의 어머니 같은 사람을 바란다고 밝혔다.
"아들들은 어머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배우자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셨던 것들이 문득 생각날 때가 있어요. 너무 늦게 가고 싶진 않아서 40살은 넘기고 싶지 않다. 일단은 그 계획만 있어요."
다만 아직은 배우로서 달리고 있다. 고등학교 때 연극을 시작해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정식배우로 데뷔한 지 햇수로 12년째. 이제 김태평이란 본명보다 "현빈이 더 익숙하다"는 그는 "신인 때보다 여유가 좀 생겨가는 것 같다"면서도 "연기엔 만족 못한다"고 연기를 향한 욕심을 드러냈다.
"아직 하지 않은 역할이 너무 많아요.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요. 다음 작품에서는 다른 직업의 다른 캐릭터일 거에요. 매체나 장르에 제약을 두진 않아요. 시나리오를 보고 작품을 정하는 스타일인데 외적인 것들을 먼저 정해놓으면 시나리오에 관한 것들을 버리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 기준점을 두지 않아요. 시나리오는 계속 찾고 있는 중입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