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통합 60년 역사만에 영국이 처음으로 유럽 연합(EU)을 떠나는 국가가 됐다. EU 28개 회원국 중 단 한나라에 불과하지만, 영국이라는 거대국가의 탈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를 지속해 온 '유럽'이라는 지역주의 계획의 생존 자체를 뒤흔드는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첫 지역통합 시도이자 이상으로 그려졌던 EU의 위기 앞에서, 유럽통합주의자들은 브렉시트(Brexit) 이후 EU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두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게다가 유럽은 이미 포퓰리즘의 성장, 이민자·난민 위기, 경기침체 등 다양한 현안들과 싸우고 있는 상태여서, 최소한 EU의 변화와 개혁은 불가피하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영국의 EU 탈퇴가 비단 EU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서방의 정치 문명"을 심대하게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되살아나는 러시아의 위협과 테러리즘으로 유럽의 발판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스크 의장은 "국민투표 결과가 부정적일 경우, 우리의 적은 샴페인 병을 딸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 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은 지난주 "EU는 브렉시트로부터 죽음의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우려도 크다. 크리스 비커턴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브렉시트가 유럽인들의 정치생활에서 EU가 지니는 핵심 역할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이후 EU가 밟을 다음 단계는 힘든 여정이 되리라고 전망했다.
브렉시트의 영향은 사실상 영구적일 것이며, 그 결과 EU는 훨씬 더 느슨하고, 임시변통에 불과한 위태로운 공동체로 남으리란 분석이다. 비커턴 교수는 '유럽연합: 시민의 지침'이라는 저서를 쓴 EU 지역주의 전문가다.
비커턴 교수는 "EU가 갑자기 사라질 것이라 생각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EU는 점차 퇴화할 것이며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며 "우리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어느 누구도 브렉시트가 현실로 벌어지리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다른 협상을 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EU 국가들은 분열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그러나 향후 유로존 등 지역 통합계획은 안전과 안보를 유지하는 선에서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특정 조항에 대한 불참을 보장하는 옵트아웃(opt-out)에 대한 요구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규범이 유연해지고 멤버십을 강제하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브렉시트가 장기적으로 EU 연쇄 이탈 도미노를 촉발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에서 EU 찬성 여론은 국민투표 이전부터 지난해 대비 최대 17%포인트(p) 떨어졌다.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이 연이어 이탈을 시도할 것으로 예측되며, 이미 '그렉시트' 위기를 치른 그리스의 지위도 재차 위협받을 수 있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지역구상은 1946년 당시 영국 수장이었던 윈스턴 처칠의 "유럽 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 발언으로부터 시작됐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경험한후 다시는 유럽 땅에 파괴와 분열이 없어야 한다는 기본적 발상이 통합의 밑바탕이 됐다.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한 뒤,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창설됐다. 전신인 1967년 유럽공동체(EC)를 거쳐 1993년 마스트리히트조약이 발효되면서 마침내 EU가 탄생했다.
이후 유로존이라는 단일통화가 만들어지고, 중부·동부유럽 각국들이 연이어 가입하면서 전체 28개국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이제 지역주의, 국제주의 구상은 물러나고 기저에 있던 개별국가들의 생존 논리가 치고 올라오면서 다시 양차 세계대전전 '춘추전국시대'로의 회귀까지 거론되고 있다.
유럽 정상들은 오는 28일 영국의 결정을 논의하기 위해 이틀 일정의 회담을 벌인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앞서 영국이 탈퇴하게 되면 EU의 "붕괴"를 피하기 위한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리라고 전망했다. 분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