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산업 기로에 섰다…재배국 늘었는데 Z세대는 "안 마셔요"[딥포커스]
- 23-09-27
기술발전으로 동유럽서도 포도 재배…공급과잉에 佛, 세금들여 재고 폐기
러·중 신흥국 판매 기대 못미쳐…'심혈관에 좋다'는 홍보 안 먹힌다
글로벌 와인산업이 기로에 섰다. 기술의 발전과 생산국 확대로 재배량은 늘어났는데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하면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Z세대들은 와인에 관심이 없고 기대를 모았던 신흥국 판매도 기대에 못미치는 실정이다.
26일 포브스에 따르면 전세계 와인산업은 극심한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호주산 와인은 현재 2년치 물량인 2억5600만 상자가 재고로 쌓여 있다. 세계 2위 와인 생산국 프랑스도 비슷한 사정이다. 지난 8월 프랑스 정부는 2억유로의 예산(약 2800억원)을 배정, 악성 재고를 구입해 향수 생산 등 산업용 알코올로 증류하기로 했다.
스페인 유명 와인 산지인 라 리호아에서도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와이너리들이 와인 판매가 안돼 전례 없는 재정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현지 와인전문 매체 빈투르가 전했다. 글로벌 투자기관 라보뱅크는 이처럼 소비자들이 찾지 않아 각국 창고에서 썩고 있는 와인을 합하면 약 21억5000만리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와인이 남아 도는 이유는 와인 생산국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와인 산업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조지아 등 구 소련국들도 포도 농사에 뛰어들었다. 미국은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인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최근에는 남부 텍사스주와 동부 버지니아주도 합류했다.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도 원인으로 꼽힌다. 온도 관리가 용이한 최신식 스테인리스제 저장고와 포도 품종 개량을 위한 유전자 조작 기술에 힘입어 10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많은 지역에서 양질의 와인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지구 온난화의 역설로 남유럽에 머물던 포도재배 북방한계선이 영국까지 올라오고 있는 것도 생산 증대에 한몫 했다.
이처럼 전세계 생산량은 늘어난 반면 와인 소비는 되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1926년 프랑스인의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은 136L로 정점을 찍은 이후 음료 선택지가 늘어남에 따라 현재는 40L로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와인생산 1위국 이탈리아 사람들도 일주일 내내 와인 1병만 마시는 것으로 집계됐다.
젊은 층은 갈수록 와인을 외면하고 있다. 주류시장 조사업체 인터내셔널 와인앤스피리츠 리서치(IWSR)에 따르면 미국에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소비 침체로 2021년 바닥을 찍은 와인 소비자수가 이듬해에는 400만명가량 소폭 증가했지만, Z세대에서 만큼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와인을 마셨다는 Z세대 응답자는 2015년 조사에서 40%를 기록했지만 2021년에는 25%에 불과했다.
와인 업계 관계자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1980년대 세계적인 와인 붐을 이끈 반면 이후 세대에선 와인에 대한 관심이 차츰 식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화됨에 따라 와인 소비량을 뒷받침하려면 '세대 교체'가 이뤄져야 하는데, Z세대는 와인보다 도수가 낮아 목넘김이 좋은 맥주나 알코올 음료를 선호한다.
게다가 러시아와 중국 등 신흥국들이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와인 애호가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거란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중국 경제는 인구 감소와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데다 2021년 중국 정부는 호주의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이유로 호주산 와인에 보복관세를 매겼다. 러시아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로 와인 수입이 공식적으로 끊겼다.
와인 업계가 홍보를 위해 공염불처럼 외어온 '와인이 심혈관 질환 예방에 좋다'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폭음을 하는 밤문화가 줄어들고 각국이 음주운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업계로선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와인 애호가들은 프리미엄 와인 가격이 크게 떨어진 만큼 뜻밖의 행운을 누리고 있다고 포브스는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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