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한결같은 것은 없는
- 23-03-06
이 에스더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한결같은 것은 없는
3월이다. 연초에 단단히 매었던 신발 끈이 어느새 풀려 있다. 체로키 원주민들의 2월은 홀로 걷는 달이라기에 흉내라도 내볼까 했더니 그런 바람은 바람에 흩어지고 말았다. 그럼, 3월은? 3월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이라 했다.
숫자 3에 꽂혔다. 3에 낚인 마음이 숫자를 따라간다. 3을 슬그머니 뉘어보니 젖 냄새가 몽글몽글 피어난다. 3은 인간이 세상에 나와 가장 먼저 대하게 되는 숫자가 아닐까. 엄마의 품에서 어렴풋이 익힌 3의 형상이 숫자와 도킹하는 순간 3은 이미 완전함의 상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세상 어디에도 엄마의 품 같은 곳은 없으니까. 3을 닮은 엄마의 가슴은 누구나 이르고픈 온전한 평온의 근원일 게다.
하루 세 끼를 먹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놀면서 자연스레 3의 무게와 세 번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다. 삼색 신호등을 보며 삶의 길에도 가야 할 때와 멈춤의 때가 있고 돌아가는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젊음이 빠르거나 더디게 혹은 멈춘 듯하며 지나갔다. 정반합이 이루는 삼각형을 이해하고 스스로 삼각형을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픔이라 여겼던 각은 합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굽힐 줄 아는 용기와 타인을 향한 배려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3을 왼쪽으로 돌려서 끝을 살짝 잡아당기면 새의 날개가 된다. 3월엔 움츠렸던 날개를 펼칠 만한 때이다. 높은 곳이 무섭다던 막내가 어느 날 낙하산을 한 번 타고 나더니 무서움을 떨쳐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게 어찌 자유롭고 가볍기만 할까. 추락하는 것들은 모두 날개를 가졌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알고 있을까. 햇살을 등에 업고 빛을 향해 날아오르는 세 마리의 새를 그려본다.
상대의 진심에 다가가는 수 역시 3이다. 거짓말 하는 아이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하면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결국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3의 힘이 세다.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예수가 세 번 물었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베드로는 예수를 사랑한다고 세 번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물고기를 잡던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변했다. 3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있다.
3월은 행진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달이다. 나는 3월에 결혼했고, 세 딸을 기르며 함께 성장했다. 1과 2의 세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3의 세상에서 경험했다. 3은 생명의 수이다. 남편과 함께 이인삼각으로 등반 중인 삶이 어느덧 정상을 넘어섰다. 이제부턴 산을 오를 때 놓쳤던 것들을 보기 위해 찬찬히 걸으려 한다. 물음표보다는 느낌표와 말없음표의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 점 세 개 속에 담긴 침묵의 멋과 깊이를 내 안에 더하고 싶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3의 미덕을 닮아가는 3월이었으면 한다.
한쪽이 열려 있는 3의 모양을 따라 팔을 벌려 본다. 멀리서 사는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3의 품에 가득하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가 떠오른다. 그림 속 아버지의 손은 그 모양이 서로 다르다. 한 손에는 부성이, 다른 한 손에는 모성이 그려져 있다. 탕자의 이야기보다 그림이 마음에 더 와닿는 까닭이다. 탕자가 그랬듯이 깨진 삶의 조각들을 붙들고 내가 찾아간 곳도 두 개의 다른 손을 가진 아버지의 품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3이 아름다운 것은 그 품이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3은 내게 사랑의 깊이를 알아가게 하는 절대수이다.
아라파호 원주민의 달력에 의하면, 3월엔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덕스런 마음을 나무라지 않아도 되는 너그러운 달이 3월이다. 한결같을 수 없는 달에는 한결같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작심삼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때, 다시 작심하기 좋은 달이다. 새로운 것을 향해 행진을 시작하는 달에는 마음껏 가슴을 부풀려도 괜찮다. 설레고 부푼 가슴이 오히려 멋있게 보이는 때이니까.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3월의 창을 활짝 연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한인 여러분, 챗GPT로 가게 홍보하세요”
- 바슬시 5월 아시아태평양의 달로 선포
- 광역시애틀한인회와 부천상공회의소 MOU
- 시애틀영사관, 시애틀국제영화제 특별후원
- KWA 대한부인회 올해 장학생 선발한다
- 한국학교 서북미협의회 합창대회서 코가한국학교 ‘대상’(+영상,화보)
- 조기승 회장 모친상속 14대 서북미연합회 힘찬 출발(+화보)
- 104세 생일 맞은 오리건주 최장수 신명순 할머니 생일잔치 열려
- [시애틀 수필-문해성] 글월 문, 바다 해, 별 성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김철훈 목사 소고(小考-2)
- [서북미 좋은 시-이매자] 아버지의 등
- 워싱턴주 한인교계 큰별 박영희 목사 별세
- [부고] 조기승 서북미연합회 회장 모친상
- [공고] 제 35대 워싱턴주 한인상공회의소 임시이사회 및 총회
- 워싱턴주 한인그로서리협회(KAGRO) 회원 권익과 안전 위해 최선
- “한인 여러분, 핀테크를 통한 재정관리ㆍ투자 알려드립니다”
- 시애틀 한인마켓 주말세일정보(5월 3일~ 5월 6일, 5월 9일)
- 샘 심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수치심에서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 시애틀 롯데호텔 '미국 최고 호텔 7위' 올라
- “샛별문화원으로 한국문화 체험하러 왔어요”
- "시애틀 한인여러분은 하루에 몇마일 운전하시나요?"
시애틀 뉴스
- 워싱턴주 이젠 ‘미국 최고 좋은 주’아니다
- 보잉 737기 또?…세네갈서 여객기 활주로 이탈[영상]
- 시애틀시내 전기차 충전 이렇게 이용하면 된다
- UW 땅이 인디언과 관련돼 있다고 교수와 학교측 법정싸움
- 보잉 "또"..이스탄불서 767 앞바퀴 안내려와 동체착륙
- UW 시위대 요구에도 불구하고 "보잉과 관계단절 안할 것”
- 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CEO "영업부진? 답은 결국 매장에 있다"
- FAA "보잉 787드림라이너 기록 위조 등 조사중"
- 시애틀지역 집값 12% 올랐다
- 시애틀서 주택 리스팅 가장 좋은 시기는? 지역마다 다르다
- 시애틀 이번 주말 처음으로 80도 돌파한다
- <속보> I-90서 탈출했던 얼룩말 1주일만에 발견됐다
- 시애틀 적자예산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나
뉴스포커스
- 한전 1분기 영업이익 1.3조…연료비 하락에 3분기 연속 흑자
- 정부, 의대증원·배정 자료 49건 법원 제출…이르면 내주 선고 전망
- 尹 정부 3년차, 물가·민생 안정 최우선 28%…경제회복 17%
- '육아휴직 2년'에 승진도 쏜다…법령 뛰어넘는 재계 저출생 대응
- "44년이 흘렀어도 아직도 생생"…5·18 민주묘지 추모객 발길 '북적'
- '부산지법 앞 흉기 살해' 50대 유튜버 구속…"도주 우려"
- 살인사건 피의자가 명문대 '의대생'이면 생기는 일
- "국민의 요구"…거리로 나선 野6당, '채상병 특검법' 尹대통령 압박
- 정부 "외국의사, 당장 투입 안해…'의대증원' 자료 충실히 제출"
- 매출차 고작 '145억'…편의점 투톱 GS25·CU 경쟁 더 치열해진다
- 전국 아파트 입주율 63.4%…미입주 사유, '세입자 미확보' 3개월째 ↑
- 尹 '채 특검' 거부권 시사에…민주 초선들 '천막농성' 나선다
- '역대급 하자' 오룡 힐스테이트 논란에…현대엔지니어링 "깊은 사과"
- 기재차관 "배추·양배추·김 할당관세 신규 적용…김 양식장 개발"
- 아파트 24층서 생후 11개월 조카 던진 고모…母 요리하는 사이 비극
- 민주 "정부, '라인 사태' 수수방관 굴욕외교…외통위·정무위 긴급 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