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박보라] 스팽글 드레스를 입은 브람스

박보라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스팽글 드레스를 입은 브람스


공짜 표가 생겼다. 브람스를 만나러 간다. 낮 동안 비 내린 시애틀 거리는 사람들의 표정만큼이나 축축하게 젖어있다. 서두르는 구두에 찰박찰박 소리가 붙는다. 스타 연주자의 시애틀 공연이라 그런지 연주 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간만에 느끼는 인파 속에서 묘한 불안감이 든다. 동행을 잃어버릴까 봐 얼른 손목을 잡아챈다. 

연주 홀은 청중들로 금세 가득 찼고, 젊은 층이 많다는 점이 좀 의외였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도시라니, 시애틀이 갑자기 19세기 유럽의 한 도시 같다는 착각이 인다. 잠시 후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위 오케스트라 단원들 앞으로 지휘자가 힘차게 걸어 들어온다. 그리고 드디어 스타 연주자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청중들은 모두 의자에 기댔던 허리를 곧추세우고 귀와 눈을 온전히 그녀의 바이올린 연주에 바짝 갖다 붙인다. 화려하고 힘 있는 그녀의 연주. 그런데 왠지 모르게 서운하다. 그녀의 드레스에 붙은 스팽글 장식이 조명에 화려하게 반짝인다. 

다른 집 엄마들이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불러줄 때, 우리 엄마는 늘 브람스의 자장가를 불러줬다. 이모 집이 있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2년 동안 살다 온 탓도 있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브람스의 출생지가 그와 같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난 독일, 특히 함부르크의 분위기를 잘 안다. 조용하게 가라앉은 너른 들판은 공기조차 탁색을 입는다. 마치 독일인 같다.

물론 독일인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민족성이라고 부르는, 그 나라만의 색과 분위기가 있다. 한국인이라 하면 빠르게 움직이는 습성과 세련된 외모를 가장 먼저 머릿 속에 떠올리는 것처럼 독일인을 생각할 땐, 검소한 옷차림과 조금은 재미없는, 심각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래서 독일의 음악과 문학은 매우 깊이가 있다. 그들은 책을 많이 읽고 인간의 문제나 정치적 이슈, 환경 관련 문제 등에 대해 저마다의 깊이 있는 생각을 갖는다. 그들의 음악에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한 음을 고치고, 고치느라 종이를 여러 장 덧대어 붙였다는 베토벤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스트라빈스키가 브람스의 색을 회색이라고 말했던가. 나 또한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의 곡들은 하나같이 탁색이 깔린 함부르크의 너른 들판을 떠오르게 한다. 좁은 흙길로 큰 개와 함께 산책하는 탁색을 입은 심각한 독일인이 보인다. 그리고 그 길 어딘가의 작은 벤치에 앉아 손바닥만 한 책을 꺼내어 진중하게 읽고 있는 독일인도 보인다. 우중충하게 내리는 작은 빗방울 속에서도 뛰지 않고 둔탁한 발소리를 내어 걷는 독일인, 단순하고 규칙적인 삶을 즐기는 다소 딱딱한 분위기의 독일인도 그 안에 모두 섞여 그들의 특성에 굵은 선을 긋는다. 

스타 연주자의 연주가 모두 끝나자 청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소리치며 박수를 보낸다. 그녀는 몇 곡의 앙코르곡을 더 연주하곤 무대를 떠났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화려한 드레스가 반짝이를 잔뜩 쏟아놓는 것 같다. 그 후에 연주곡이 더 남아 있었지만, 청중의 일부는 연주 홀을 나가버렸다. 불편하다. 아무래도 그들은 스타 연주자를 만나러 온 것 같고, 난 브람스를 만나러 와서 그런가 보다. 그렇다고 브람스다운 브람스를 만나지도 못했으니 난 여전히 서운하다. 

만져지지 않는 음들을 일일이 귀로 잡아 가슴에 박는다. 스팽글 장식 대신 빼곡히 박힌 브람스의 음들이 긴 회색 꼬리를 달고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건 바닥을 힘있게 박차고 오르는 게 아니다. 검은 구두가 살짝살짝 바닥에서 떨어져 오르지만 그다지 높지 않게 들판을 비행한다. 탁색의 깊은 고민과 생각들을 꼬리로 달고 차분하고 느리게 움직인다. 

스타 연주자의 공연이 어땠는지 누군가 내게 묻는다. 난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미국적인 브람스’라고. 그건 마치 아리랑을 부르며 화려한 스팽글 장식의 드레스를 펄럭이는 것과 같고, 힘차고 화려하게 수많은 꾸밈음을 넣은 것과 같다고 말끝에 덧붙인다. 

물론, 모든 연주는 연주자의 재해석이 가능하다지만, 난 아직도 그 본연의 모습이 그립다. 군더더기를 넣지 않은 회색의 브람스가 여전히 좋다. 그래서 편안히 독일 함부르크의 이름 모를 흙길을 걷고, 그러다가 작은 벤치를 만나면 그곳에 앉아 손바닥만 한 책을 읽고 싶다. 

연주 홀을 나와 다시 시애틀의 거리를 걷는다. 비가 그치자 축축하게 젖은 콘크리트 위에 알록달록한 불빛이 반짝인다. 그 화려한 불안감에 동행의 손목을 잡아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