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김학인] 다리

김학인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고문)

 

다리


다리를 건너간다. 레이크 워싱턴을 가로질러 시애틀과 이스트 사이드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7710피트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긴 부교(浮橋)다. 나비가 날아가듯 차에 몸을 싣고 6년 전에 개통한 520번 다리(에버그린 포인트 부교)를 건너간다.

숲과 호수와 바다의 도시라는 시애틀은 육지보다 호수 면적이 더 넓다. 워싱턴주에는 가장 큰 자연 호수 쉴란(Chelan)을 비롯해 이름난 호수만도 열다섯 정도 꼽는다. 520번 다리 아래 유유히 흐르는 레이크 워싱턴 또한 호수라기보다 넓은 바다의 한 자락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다리 아래 출렁이는 맑은 물은 바람과 햇살 때문에 좌우가 다른 푸름과 결로 넘실거린다. 여름이면 하얀 돛단배가 수면 위를 미끄러지는가 하면, 크고 작은 유람선들이 흰 거품을 남기며 물결을 헤쳐간다. 작달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저들도 쟁여 둔 응어리가 있었던지 파도를 토해내면서 몸을 뒤척인다. 다리 위에서 멀리 구름을 뚫고 레이니어산 정상의 신비로운 눈 삿갓이 시야에 들어오는 날은 횡재한 기분이다. 다리 건너편엔 높고 낮은 건물들이 건축공학을 자랑하며 IT 산업도시의 면목을 과시한다.

내게 각인된 유년 시절의 다리는 만주 길림의 송화강 다리다. 송화강(현지어:승가리 강)은 백두산 천지 비룡폭포에서 시작해 길림성, 흑룡강성 지역을 흐르는 만주 최대의 내륙수로다. 그 다리가 완공되기 전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어느 해 여름, 온 식구가 강 건너의 한적한 강가에서 부모님은 수영을, 우리는 물가에서 모래성을 쌓거나 물장구를 치며 하루해를 즐겼다. 그곳은 번잡한 도시와 달리 아늑한 숲과 강변엔 약초들이 무성했던 기억이 난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여인에게 좋다는 익모초와 이름 모를 약초를 뜯어 배에 얹으셨다. 따뜻한 목욕물에 띄운 약초는 집안에 은은한 향기를 피웠고, 나는 그 향긋함을 좋아했다. 밤이면 불빛 하나 새어 나지 않은 강 건너 흑암의 땅. 어쩌면 그 땅에는 만화에서 본 신령 님이 살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곤 했다. 타박타박 걸어서 송화강의 긴 다리를 두어 차례 밟아본 후 해방과 더불어 그곳을 떠났다.

이처럼 다리는 어린 나에게 한동안 신비한 상상력을 키워주었다. 인적 드문 푸른 숲은 싱그러웠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길섶에서 작은 미소로 사람을 반기고, 약초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듯 갈바람에 흔들리며 부드러운 향기를 풍기던 곳. 거긴 필시 내가 사는 쪽보다 훨씬 안온하고 볼거리가 풍성한 세상일 것이라 꿈꿔왔다. 그 멋진 환상이 깨진 것은 6.25 전쟁이다. 서울에 살던 우리는 6.25 전쟁 발발 이틀 후 한강 다리가 폭파됐다는 소식에 허둥거리며 소지품을 챙기던 손을 멈추고 무서움에 떨었다. 탱크를 앞세우고 남하하는 침략군을 피해 남으로 밀려가던 피난 행렬이 끊어진 다리 앞에서 주저앉아 울부짖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다리는 생사를 갈라놓는 엄중하고 무서운 문명의 장치였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비극이 끊어진 한강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일어났는지 역사는 그 일을 슬프게 증언한다.

다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있다. 마치 “만남의 의자”같은 다리. 어머니를 잃은 깊은 상처로 날개 꺾인 작은 새처럼 외딴섬에서 물과 하늘을 바라보던 초라한 나. 상실의 아픔이 이어지던 시절, 나의 운명인 남편과의 만남도 친구가 놓아준 다리로 연결됐다. 외로움이 나를 그에게 기울게 한 우연 같았지만 돌아보면 그건 필연이었다. 사람의 생각 너머에 계신 분의 섭리가 아니라면 어떻게 65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지탱해 갈 수 있을까. 물론 이 끈질긴 인연은 다리 위에서 본 멋스러운 경관의 연속은 아니었다. 흐리고 비바람 몰아치던 날들, 젖은 땅을 밟아온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세월을 몸으로 마음으로 버티면서 나는 안팎으로 근육이 다져지고 강인 해졌는지도 모른다.

다리, 세상에서 최고의 다리를 떠올린다. 흔히들 샌프란시스코의 자존심이라는 금문교나, 시드니의 웅장한 하버 브리지라고 말한다. 과연 그것들은 인간의 놀라운 교량건축 기법으로는 최고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꼽는 최고는 따로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다리’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돌아갈 본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다리. 그걸 건너기 위해 익혀야 할 순종의 본을 보이시고 스스로 그 다리가 되신 분. 생명으로 값을 치르고 자격 없는 우리에게 하늘 길 열고 ‘다리’ 놓아주신 그 사랑에 가슴이 뻐근해 온다. 그분이 가르쳐 주신 덕목들을 헤아려 본다. 순종, 용서, 화해, 절제… 하지만, 그것들을 삶으로 옮기는 일은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나를 알고 지켜 보시는 그분의 은혜를 힘입어야만 실천할 수 있기에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뒤돌아보면 삶에서 맞닥뜨린 다리들, 물에 잠긴 징검다리에선 몸소 디딤돌이 되고, 철렁 다리 위에선 다리보다 더 흔들리던 마음을 붙잡아 준 나의 주님. 그분 의지하고 다리들을 건너온 은혜 덧입은 세월에 압도되어 갑자기 눈앞이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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