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고유가 속 사우디와 관계 개선 추진…실제 효과는?

유가 떨어지는 듯했지만…美 WTI 되레 1% 반등

바이든, 빈살만 왕세자 직접 만나 추가 '선물' 가져올까

 

미국 백악관이 '고위 당국자발' 언론 보도를 통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가능성을 흘린 다음날 사우디는 자국이 사실상 리더 역할을 하는 산유국 모임의 증산 결정으로 화답했다. 

뿐만 아니라 6월 2일로 만료 예정이던 예멘 내전 휴전 기한도 2달 연장, '중동의 골칫거리' 하나를 잠정 봉합했다. 예멘 내전은 사우디 주도 연합군과 이란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8년째 치르는 전쟁이다. 

시장의 반응은 애매하다. 석유수출국기구(오펙·OPEC10개국과 러시아 등 산유국 13개국 모임인 오펙 플러스(+)의 증산 발표 직후 유가는 약 3% 떨어지는 듯 했지만, 이후 미 서부 텍사스유(WTI) 선물은 배럴당 약 117달러로 1% 올랐다. 

사우디가 바이든 미 행정부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 호응하고 있지만, 실제 협력 수준과 증산 수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를 산유국 모임에 어렵게 끌어온 사우디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결코 놓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힘을 더한다. 

◇사우디 '부랑국가'라더니 SOS 친 바이든

미국 동부 시간으로 1일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영·미권 언론에서는 익명의 미 행정부 당국자 전언을 인용,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순방이 조율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방문이 성사되면 바이든 대통령이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포함해 걸프 국가 정상들을 만날 예정으로도 전해졌다. 

사우디와의 우호적 관계를 추진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유세 때부터 사우디를 '부랑국가(pariah)'라고까지 칭하며 극렬히 비난했다. 2018년 고문 흔적에 더해 숨진 채 발견된 사우디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배후에 빈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취임 직후인 작년 2월 미 정보당국(DNI)은 이 같은 결과를 공식 발표했고, 바이든 집권 기간 미·사우디 관계는 회복되기 어려워보였다. 빈살만 왕세자는 왕위계승서열 1위로, 사실상 국가 리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런 사우디에 바이든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민 건 올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다. 미국, 사우디와 더불어 세계 3대 산유국인 러시아를 '공공의 적'으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영국과 미국은 3월 말 러산 원유 금수를 발표했고, 러산 원유 최대 수입처인 유럽국가들에도 이를 종용했다. 

결국 유럽연합(EU)이 진통 끝에 연내 러산 원유 수입을 90% 줄이는 6차 제재에 합의하면서, 대안처 모색은 더 긴요한 과제가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여러 차례 사우디 등 주요 산유국에 증산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나 고유가 속 이를 더 미룰 수 없게 되자, 결국 '선물'을 들고 적극 구애에 나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순방 계획이 보도되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브렛 맥거크 중동 담당과 아모스 호츠스타인 백악관 에너지 특사 등의 미 고위 당국자들이 최근 여러 차례 사우디를 방문해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오펙플러스는 2일 성명을 내고 7~8월 원유 생산량을 하루 6만8000배럴 증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계획했던 생산량보다 약 50% 많은 분량이며, 석 달치 계획 방출량을 두 달간 짜내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백악관이 수개월간 중동 오일 자이언츠에게 로비한 끝에 나온 외교적 돌파구라고 NYT는 부연했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는 이날로 만료 예정이던 사우디 연합군과 이란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 간 예멘 내전 휴전 시한을 두 달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사우디 호응했지만 유가는 '글쎄'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이 마침내 증산 요청에 화답하면서 개전 이래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던 원유 시장은 냉각 조짐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미 원유 기준 가격인 WTI가 이날 오후 배럴당 117달러로 1%가량 올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미국과 사우디의 '해빙' 무드는 왜 시장의 신뢰를 사지 못했을까.

조반니 스타우노보 UBS 애널리스트는 "OPEC+의 생산량이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말은 던졌지만, 실제로 증산 여력이 있는 국가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외에 한 두 국가 정도 더 되는 데 그칠 것이란 분석이다. 

JP모건의 오일가스리서치팀장 크리스티안 말렉도 "이번 합의로 석유 생산량이 크게 늘거나 유가를 많이 낮추지는 못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산유국 그룹이 오일 시장에 고무탄을 발사하는 것과 같다"며 "허울뿐인 증량"이라고 혹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까지 하루 1130만 배럴의 원유를 퍼올려 전 세계 공급량의 약 11%를 차지해온 '메가 산유국'이었다. 서방의 제재로 일일 시추량이 70만 배럴 줄었고, 7월부터는 일일 17만 배럴 증량할 계획이었다. 

다만 OPEC+의 증산 계획이 당장 고유가를 해소하지 못하더라도 사우디와의 관계 재설정을 위해 노력해온 바이든 행정부에는 상징적인 가치가 있다고 WSJ는 부연했다. 미 행정부는 바이든 대통령 성명과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 언급 등을 통해 연신 사우디를 칭찬하고 외교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방문 성사시 '더 좋은 카드' 내밀 수도

그러나 사우디가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더 좋은 카드를 남겨두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NYT에 따르면 엔베루스 오일가스조사팀장 빌 패런-프라이스는 "제재로 러시아의 생산량이 더욱 줄면 사우디가 공급을 더 늘릴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번 합의와 미·사우디 관계 변화를 "실제 증량치보다 정치적 신호 측면에서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WSJ는 이번 논의에 정통한 다른 중동 산유국(UAE 추정) 당국자들을 인용, 사우디는 러시아의 석유 생산량이 계속 감소할 경우 석유 생산량을 계획보다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들은 "사우디의 결정은 바이든의 방문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빈살만 왕세자를 직접 만난 뒤 얻어낼 수 있는 카드에도 자체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우디는 러시아를 산유국 모임에 끌어들이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고 결국 2016년 러시아가 OPEC+에 합류했다. 이때부터 사우디와 러시아는 OPEC+의 공동 리더 역할을 해왔는데, 5년여 간의 동맹 관계를 깨길 원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물밑 협상 중 미국은 사우디에 예멘 내전을 이유로 금지한 F-35 전투기 판매 등 무기 공급 차단을 풀어줄 테니 러시아를 OPEC+에서 배제하는 협상을 타진했지만, 사우디가 이를 거절했다는 '미확인' 보도도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에너지사학자 다니엘 예르긴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가 에너지 초강대국이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컨설팅 기관 에너지 애스팩츠의 오일시장부분장 암리타 센은 "사우디는 러시아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조금씩 뭔가 하고는 있지만,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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