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
유진 중앙교회 담임(오리건주 유진/스프링필드소재)
해안의 산보다 큰 고아 사랑
지난 1995년 6월 미국의 첫 목회지로 찾아와 지금까지 20여년간 사역하고 있는 이곳 오리건주 유진은 인구 17만 5,000여명의 도시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강이 흐르는 곳마다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 풍요로운 삶을 일궈주는 것처럼 깊은 강이 소리없이 흐르는 이 조그만 도시에는 조국 대한민국에서 버림받은 어린이들을 입양을 주선해 훌륭하게 길러낸 잊지 못할 홀트 아동복지회 세계본부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동란 직후인 1954년 폐허의 한국 땅을 찾아 온 파란 눈의 중년 백인이 있었다. 헤리 홀트(Harry
Holt)씨였다.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들을 데려다가 오리건주 크레스웰(Cresswell)의 자기 집에 입양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연방의회는 1955년 특별 법안을 통과시켜 홀트씨 부부는 8명의 한국전쟁 고아를 입양시켜 기를 수 있게 됐다.
오리건주 해안은 미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목재업으로 크게 성공한 홀트씨는 해안가의 산들을 많이 사들여 돈을 많이 벌었고 그 많은 재산을 입양 사업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다. 한때는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오리건주 해안가를 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넓은 임야를 소유했지만 그동안 입양 사업에 모든 재산이 소진되고 남은 것은 이곳 유진의 국제 홀트 복지회(Holt
International) 사무실 뿐이다.
전쟁 고아들을 찾아 동분서주하던 홀트씨는 55세에 서울 근교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인 버다 메리안 홀트(Bertha Marian Holt)씨의 헌신으로 입양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한국과 고아들을 무척 사랑했다.
한복 차려 입기를 즐겼고 그가 사용하던 조그마하고 검소한 방 벽에는 자신이 길러낸 꼬마 천사들이 보내온 감사의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할머니, 사랑해요! (Grandma, I love you!)”
지난 2000년 7월24일, 유난히 밝고 빛난 여름날 수많은 고아들을 입양시켜 길러낸 크레스웰에서 그녀 역시 96세를 일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곱게 늙으신 버다 홀트씨를 보면 고향의 어머니를 뵌 것처럼 기뻤었다. 이제는 천국에서 뵐 기약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썰물처럼 허전하다.
그녀의 장례식은 크레스웰 본가에서 많은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우리 교회는 내빈들에게 한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평소에 한국과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시던 홀트씨 가족에 대한 정성이었다. 갈비, 잡채, 부침개, 김치, 야채절임 등으로 푸짐하게 준비하여 크레스웰 본가로 향했다.
버다씨가 사용하던 방안에 들어섰다. 조그마한 방에는 침대 하나, 작은 사무용 책상이 전부였다. 소파도 없었다. 벽에는 해맑게 웃고 있는 어린이들의 사진이 걸려있었고 그들이 보내온 감사카드들이 가지런하게 붙여져 있었다.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 18:14).
오리건 교육청은 홀트씨를 기념해 유진에 홀트 초등학교(Holt Elementary School)를 설립했다. 새로 지은 건물의 깨끗한 학교인데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버다 홀트씨의 활짝 웃는 모습의 대형 사진이 매우 인상적이다.
매년 정월에 우리 교회가 입양아 가족 및 한국전 참전용사 가족 초청 정기 연례 음악회를 열어 그 고마움을 함께 나눈 지가 어언 20년쨰가 되고 있다.
홀트씨는 자신이 소유했던 오리건 해안가의 넓고 아름다운 산림 대신에 무한한 주님의 사랑을 소유하며 살다가 주님의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