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홍(교육전문가)
혜안의 힘
옛날 봉래산 근처 마을에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약초를 찾아내 진시황에게 바치면 벼슬과 보화가 보장된다는 들뜬 마음으로
사방에서 약초꾼들이 모여 들었다.
산으로 달려간 그들은 약초처럼 생긴 모든 풀을 뿌리째 뽑아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아들도 아버지에게 “나도 약초를 찾으러 산에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 같으면 마을 어귀에 약초채집 도구점을 차리겠다.”
육안(肉眼)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물 혹은 현상을 보는 눈이요, 혜안(慧眼)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이다. 16세기 당시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고 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불가능 한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을 터인데 그것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낸 뉴턴, 그들은 겉에 드러난 현상 뒷편에 존재하는 본질을 간파하는 혜안을 지녔다.
여름방학을 앞둔 학생 대부분도 약초꾼이나 아들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 한국에 나가 SAT를 준비하거나, 선행 혹은 보충 학습 등 육안에 보이는 것을 치장하느라 분주한 여름을 보내지만 정작 보이지 않는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는 힘은 어디서 올까. 혜안의 눈을 키우려면 그것을 가로막는 훼방꾼이 누구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학교 교육이다. 이론적으로 학교는 지성과 창의력에 점화를 시켜 올바른 사고 방법(비판적 사고력)을 쏟아내게 만드는 훈련장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반대다. 알러지 약을 복용했을때 나른하거나 졸리게 만드는 항히스타민제 작용을 일으켜 학생을 좀비로 개조하고 있다.
한국에 나가 SAT를 준비하거나 미리미리 공부하는 것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것이 대학 진학 준비의 최우선이요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척도라고 여기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서부 개척시대의 기질과 습관을 이어받아 미국 학교가 학생의 육체를 단련시키고 강인한 의지를 키우려고 스포츠에 주력하는 것과 같다.
인디언을 약탈하고 몰아내면서 목장과 농장을 넓혀간 당시 개척자들에게는 황량한 광야와 반항하는 인디언과 맞설 강인한 체력과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에 따라 스포츠는 개척정신과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 되었고, 자연스레 학교와 사회에는 연중 행사가 스포츠로 시작해서 스포츠로 끝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스포츠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고교나 대학신문이 스포츠 신문처럼 변질되었고, 사교모임에서 스포츠 이야기를 빼면 건질게 없는 현실이 문제다.
혜안은 깊은 사고를 전제로 하고, 사고는 고독에서 오며, 고독은 공부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운 시간을 요구한다.
스피노자는 수도원 구석방에, 파스퇴르와 에디슨은 고립된 실험실에, 샐린저는 콘크리트 벙커 속에 틀어박혀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번잡과 훼방을 줄이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최대한 늘린 것이다.
홀로 지내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될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색다른 빛깔을 지녔다는 것을 감지한다. 육체는 성인이지만 이성적, 조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전두엽이 미완숙 상태인 청소년 대부분은 그런 환경과 거리가 멀다.
떼지어 몰려다니며 서로에게 복제판이 되거나, 무기력ㆍ충동ㆍ무모가 아우러져 마약ㆍ술ㆍ섹스 3박자에 들썩거리기 일쑤다. 전두엽을 자극하는 환경이 아쉽다. 여름방학을 학교 교육의 연장전으로 삼는다면 더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