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칼로 물 베기
새해란 뜻의 한문인 ‘신년’(新年)이란 ‘새로워진다’는 뜻을
가진 ‘신’(新)자와
‘나이’란 뜻을 의미하는 ‘년’(年)에서 왔다.
‘송년’(送年)은 ‘물건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보낸다’는 뜻의 ‘송’(送)자에서 왔다. 이
‘送’자가 들어 있는 낱말은 하나같이 ‘보낸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별하며
헤어짐을 ‘송별’(送別)이라고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1월은 묵은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달이기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달이다.
한쪽은
들어오고 다른 한쪽은 나가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가고 무엇이 들어올까.
물이 나가고 그 물이 또 들어온다. 물은 시간과도 같다.
물고기가 어디에서 헤엄치며 살고 있는가. 물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물이 흐르듯 시간도 흐르다 보니 한 평생 살아가는 ‘인생행로’(人生行路)를 따라 흘러서 변하고 바뀌며 살아가는 것을 ‘인생유전’(人生流轉)’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가공 처리하지 않은 나무인 원목(原木)을
제재소에서 큰 톱으로 잘라 토막을 낸 뒤 요긴한 목재로 사용한다.
이처럼 우리는 시간이란 원목을 초, 분, 시간, 날, 주, 월, 년, 십 년(Decade), 한 세대30년, 한 세기 100년 그리고 천 년(Millennium) 등으로 구분해 시간 단위의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있다. 물을 아무리 큰 검으로 내려친다
해도 베어지지 않듯이 시간도 엄밀하게 토막을 내 구분해 갈라놓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초, 분, 시 등으로 나누는 것은 하나의 약속으로, 모두가 그렇게 지키기로 한 약속에 불과하다.
이 약속은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꼭 필요한 필수’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국이 한 해라면 일본도 그렇고 중국과 유럽, 미국도 모두
한 해가 되는 것이다.
누구에 의해 강요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온 세계가 말없이 이를 따른다. ‘침묵의 약속’으로 모든 인간에게는 ‘불문율(不文律)’이다.
시간이란 행복을 손에 쥘 수 없듯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번 흘러간 물로는 다시 그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듯이 인생길 역시 일반통행이지 쌍방 통행로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죽는 것이지, 죽어보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 오대양 육대주에는 72억명이란 인구가 흩어져 살고 있다.
이 가운데 하루에도 15만3,500명이 쉴새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숨져가고 있다. 초당 두 사람 꼴이다.
참으로
덧없는 초로인생(草露人生)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성경은‘인생은 그 날이 들의 풀과 같고 그 영광이 들의 꽃과 같다’고 했다(시편 103:15).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어떤 무엇에도 의지할 것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솔로몬 왕은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일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전도서 1:14).
결국 ‘묵은 해’니 ‘새 해’니 구별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쳐준다. 삶의 주기를 1년 단위로 압축해 놓은 달력을 이용해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조감(照鑑)해보면 숨 쉬고 살고 있는 바로 지금, 그리고 오늘 하루만이 양다리를
딛고 살고 있을 뿐, 미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는
오늘의 결과이고 내일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오늘이기에, 어제 열매를 바라보며 내일의 씨앗이 되는 오늘을
위해 세월을 아끼며 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
닭의 해인 새해를 맞아 하루 하루가 내일을 여는 첫 장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