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김소희] 머플러가 되어줘

김소희(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머플러가 되어줘


극장을 나오니 

거리는 겨울밤이 되어 함께 깊어가고 있었다

춥지? 물으며 머플러를 풀어

목에 둘러주면 전부를 받은 거 같아


그 후로

잎이 맨바닥에 내려앉을 때부터

신앙처럼 머플러를 붙들어 매고 다닌다

위로를 받는다는 건 

다리 하나가 부서진 의자 위에 온종일 앉아 있는 일

따뜻함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답답한 걸 싫어한다면서 

휜 목을 숨기려 한다 


울퉁불퉁한 기침과 움츠린 목으로 창을 내다본다

멋대로 흩날리는 싸락눈 속

바람에 다 내주고도 시리다고 말하지 않는 

겨울나무의 마른 목덜미

끌려다니다 매달린 연이 있다


볕이 잘 드는 언덕으로 너를 데려다줄 게

나에게로 와서 

머플러가 되어줘


나는 오래도록 목에 손을 얹고 있었다

다른 소리는 아무리 부러트려도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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