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김홍준] 사랑한 것이 죽을 죄인가요?

김홍준 수필가(오레곤 문인협회 회원)

 

사랑한 것이 죽을 죄인가요?


내가 사는 곳은 어디를 가도 하늘을 찌를 듯이 시원스레 쭉쭉 뻗은 미송과 백향목으로 울창한 숲이 펼쳐지는 깊은 산간 지역이어서 건강한 환경과 풍성한 물질을 제공해줘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곳이다.

숲속에는 곰이나 쿠거, 엘크 같은 커다란 동물에서부터 작은 다람쥐나 산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하천에는 연어, 송어 등 수많은 물고기와 각종 버섯이나 고사리, 산나물 등등 풍성한 먹거리도 풍성하다.

이 울창한 숲을 통과하는 시원스러운 대동맥과 같은 고속도로가 있어 대형 트럭들이 분주하게 실어 나르는 목재는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지역 경제를 윤택하게 해준다.

2년 전 숲 속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사는 깊은 산골 고속도로 곁에 있는 편의점 가게를 사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작은 도시에서도 25마일 30여분 걸리는 아주 한적한 산골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지 2.5에이커 3,000여 평의 넓은 땅과 가게 그리고 가게 뒤에 딸린 작은 살림집이 자리하고 있다.

가게의 전 주인이 한국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기르던 랩 종류의 커다란 개 두 마리를 두고 갔다. 처음에 낯설고 적적한 곳에서 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목재를 실어 나르기 위한 숲 속에 난 임시 도로를 따라 개들과 산책을 하면 개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앞서 달리다가 내게로 달려와서 확인하고 마음껏 뛰어다니며 좋아한다. 나는 곰이나 쿠거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숲속에서 얼마나 든든한 지 보디가드라는 말이 실감난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많은 동물을 키웠는데 아내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아무 동물도 키우지 않겠다는 아내를 설득하여 전에 키우며 좋아했던 공작새와 이곳은 장사하는 곳이고 집을 지키는 커다란 개와 거위 몇 마리를 키우기로 했다.

오리건주에 가서 공작새 몇 마리를 구하여 키우기 시작했고 개는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남에게 주었다. 부화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작은 공작 병아리를 사왔는데 어미가 먹이 먹는 것과 행동을 일러주면서 키워야 하는데 어미가 없으니 제대로 키울 수가 없다. 경험자의 말을 들으니 작은 병아리들과 같이 키우면 보고 따라 하면서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같이 키우다 몇 달이 지난 후 공작새가 어느 정도 자라면 닭은 몸보신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어린 병아리 10여 마리를 사다 같이 길렀다. 약병아리 정도 자라서 몇 마리를 사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알을 낳기 시작한다. 넓은 뜰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건강하게 자라서 낳아주는 고소한 친환경 알을 맛보니 너무 좋아 그냥 키우게 되었다. 매일 낳아주는 알을 다 먹지 못해 가까운 분들과 나누어 먹는 맛이라니!

몇 개월 후 동네에 사시는 권사님이 늙어서 알을 낳지 않는다며 몸보신이나 하라고 오리 두 마리를 주어서 가져왔는데 정성껏 돌보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달걀보다 커다란 뽀얀 알을 낳아준다. 오리알은 간이나 췌장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약으로 쓰이며 오리고기는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각종 영양분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사용된다.

며칠 후에 단골 손님이 기러기 두 쌍을 키웠는데 야생동물이 암컷을 잡아먹어서 수컷 두 마리를 가져다 주었는데 요것들이 말썽꾸러기다. 혈기 왕성한 젊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리나 닭들을 공격하는데 덩치가 얼마나 큰지 닭의 2배가 넘는다. 

공격을 당하는 놈들은 싫다고 고함을 치면서 야단이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기러기 암컷들이 다리가 부러지고 심지어 죽기도 했다. 기러기 수컷의 성기가 나사같이 꼬불거리고 부드러우며 20cm 이상 길어서 관계하기가 몹시 어렵다. 수탉 꼬리를 물어뜯어서 다 뽑아 놓고 수컷 오리를 공격하여 다리가 부러졌다. 동물 가족들의 평화를 다 깨뜨려 놓아 동물을 그렇게 사랑하는 딸아이도 잡아먹으라고 야단이다.

자기를 돌보아주는 나를 보면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좋아하는 기러기의 ‘사랑한 죄가 죽을 죄인지’잘 모르겠다. 어제는 공작새들과 닭들이 고속도로에까지 나가 돌아다니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이것들을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낼뻔했다고 가게에 들어와서 야단을 치고 저녁에는 전화까지 해서 동물보호 센터에 전화하겠다고 난리를 친 모양이다. 도매상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오니 아내가 토라져서 모두 가두어 놓으라고 엄명을 내린다.

그리 넓지 않은 사육장 안에서 기러기의 행패가 말이 아니다. 닭과 오리를 공격하고 공작새와 싸우다가 공작새는 훨훨 날아서 나가 버렸다.

사육장을 넓게 새로 지어서 가두어 놓는다고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 사람들 사는 세상에만 애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이것들과 어울리며 사는 기쁨을 허락하신 은혜가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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