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최인근 목사] 희생이라는 축복

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희생이라는 축복


임금님의 딸인 공주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온갖 의원들을 다 불러 고치게 하였으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결국 임금은 방을 내걸고 누구든지 공주를 살려내는 자에게는 공주와 혼인을 시키고 자신의 왕위도 물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희한한 요술을 부리는 삼형제가 이 방을 보았습니다. 이 삼형제의 첫째는 멀리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순식간에 먼 곳까지도 날아갈 수 있는 특별한 양탄자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무슨 병이든지 고칠 수 있는 마법의 사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이 삼형제는 그 공주를 고치러 가기로 하고 둘째가 가진 앙탄자를 타고 왕궁으로 갔습니다.

마침내 셋째가 들고 온 마법의 사과를 먹은 공주는 씻은 듯이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왕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삼형제 중에서 누구에게 공주를 주고 또한 왕위를 계승케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결국 왕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로 사과를 들고 온 막내였습니다. 첫째와 둘째가 망원경으로 보고 양탄자를 타고 급히 달려오는 큰 공을 세웠으나 셋째처럼 사과를 공주에게 준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었으나 셋째는 자신의 모든 것인 사과를 공주에게 주었으므로 더 이상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바로 이것을 ‘자기 희생’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극단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희생을 기리는 자식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르치고 이끌어 주신 스승의 은혜를 기억하는 제자들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와 스승도 외면한 인격자(?)가 어찌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같은 시대를 말세(末世)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예언해 두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디모데후서3:1-4)

진정한 희생을 외면하는 사람은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의 구성요소로서 가장 큰 결격사유를 가진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섬기기는커녕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봄이 찾아왔습니다. 말 못하는 미물들도 소리 소문 없이 인류를 위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전쟁과 지진과 기후변화 같은 엄청난 재난들이 종말로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들을 극복해나가야 할 사람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되어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평화롭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딱히 어버이 날이나 스승의 날에나 기억하는 레퍼토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격자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소중한 진리입니다.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 공동체는 그 자체로 부패하고 내일의 희망이 없는 비참한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아담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인류 전체를 망하게 하였으나 한 사람 예수님의 희생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그 희생정신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야 할 때입니다. 세상이 캄캄할수록 작은 반딧불도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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