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우정이 꽃피던 날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우정이 꽃피던 날


여러 해 전입니다. 필자가 잘 아는 S라는 여학생이 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이어 결혼까지 하게 되어 겹친 경사를 맞게 되었습니다.

같은 치과를 졸업한 일본인 청년을 배우자로 맞은 그녀가 어느 날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을 베푼 자리였습니다.

꽤 넓은 자리를 가득히 메운 하객들을 모신 가운데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신랑 신부의 백일사진으로부터 성장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익살스런 장면들이 슬라이드 화면에 비쳐질 때마다 사회자의 코믹한 화술이 곁들여져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몇 가지 순서가 지난 후에는 신랑 신부의 친구들 각각 2명씩 나와 축하와 함께 친구를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순서에 따라 신랑의 친구 2명에 이어 신부 친구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신부와 같은 학교를 졸업한 필리핀계의 H라는 아가씨가 나와서 준비해온 글을 침착하게 진지한 태도로 읽고 있었습니다. 친구 S의 인내력과 탐구력, 그리고 근면성을 소개한 후 S가 지니고 있는 남다른 동정심과 인간애를 극구 칭찬하면서 S가 친구인 자기를 얼마나 잘 이해해주고 격려해주고 온정을 베풀어 주었는지를 차근 차근 설명했습니다. 

특히 H가 한때 정신적으로 깊은 고뇌에 빠져 있을 때 S가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었는지 알 수 없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S의 그러한 아름다운 성품 때문에 자기는 S를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로 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H가 S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참된 이유는 또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S가 자기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신앙의 은인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 과장이나 가식없이 진지한 자세로 읽어가는 H의 글에서 신부를 잘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말에 공감했고, 신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의 새로운 품성을 발견한 듯 신부에게 경의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H양이 낭독을 계속하다가 “… S는 나에게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안내해준 최초의 크리스천 친구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녀는 낭독을 멈춘 채 울고 있었습니다.

장내는 삽시간에 숙연한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잠시 후 울음을 진정시킨 H양의 낭독이 계속되었습니다.

“…내가 7년 전 어둡게 그늘졌던 내 생의 한 고비에서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나에게 비춰주고 나를 위해 드린 기도들을 영원히 감사하며 기억할 것입니다.”(여기에서 그녀는 또 낭독을 중단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다른 하객들도 그러했겠지만 필자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물론 H양은 신부 S의 사랑 어린 우정을 고마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친구의 고마운 우정이 그녀를 그토록 감격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린 것은 친구의 우정을 통해서 받은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값지고 생명처럼 소중한 것인지를 가슴 깊이 체험으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하객들이 숙연해진 것도, 필자의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도 신부 S가 베푼 친절이나 그 친절에 감사하는 H양의 아름다운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인생의 가장 중대한 문제를 해결 지은 한 영혼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감격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참된 우정은 친구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신부 S의 전도가 H양에게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도를 전하기에 가장 어려운 대상은 나를 잘 알고 있는 친구라 생각하고 있던 필자였기에, 신부 S의 인격에 감탄하면서 그녀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습니다. 신부는 아직도 머리를 들지 못한 채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숨겨진 신부 S와 H양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의 꽃이 활짝 피어나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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