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쉬운 다이어트'의 유혹 "기쁨은 단 3초뿐"[일상된 마약]

'나비약'에서 시작…"약에서 깨면 현실이 괴로워 또 약 찾아"

정신병원서 6개월 감금…재활시설서 3개월째 노력중


치유·재활시설에서 3개월째 지내고 있는 보라(가명·27·여)가 기억하는 마약의 기쁨은 단 3초였다. 하지만 그 후 밀려온 고통은 지난 5년간 그의 몸과 마음을 지배했다. 목 주변과 손목에 어렴풋이 남은 흔적들이 삶의 이유를 잊은 채 방황하던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미용 일을 배우던 보라가 20살에 독립하면서 세운 첫번째 목표는 다이어트였다. 또래 친구들의 평범한 바람처럼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해 다이어트 한약을 먹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이 되지 않았다.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 준 것은 평소 알고 지내던 언니가 건네준 다이어트약인 일명 '나비약'이었다.

부작용은 심각했다. 잠이 오지 않자 수면제를 먹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두 가지 약을 같이 먹으면서 우울증도 찾아왔다. 스스로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참다못해 정신과를 방문해 처방전을 받아 간신히 일상생활을 유지했다.

하지만 우울감은 가시지 않았다.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큰돈을 벌기 위해 유흥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때 함께 일하던 동료가 한 남자를 소개해 줬다. 검은색 클러치백 안에 각종 마약을 지니고 다니던 그는 잠깐이라도 기분을 낫게 해준다며 엑스터시를 건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료와 남자 모두 마약 전과자였다.

"이미 다이어트약을 꾸준히 복용해 와서 정신은 피폐해진 상태였어요. 기분이 좋아지고 싶었지만 만약에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줄 알았으면 손을 안 댔을지도 모르죠. 근데 아마 그때는 다른 사람이 약을 줬어도 받았을 거예요."

현실은 쉽게 잊혔다. 보라는 당시 기억 부분 부분만 생각난다고 털어놨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에 의해 여러 종류의 마약에 취했었고 내성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25살이 되던 해에 보라는 판매상을 소개받아 효과가 가장 세다는 필로폰을 구하게 됐다.

마약을 하던 지인들이 한명 두명 검거되자 보라는 직접 SNS를 통해 비대면 구매도 하기 시작했다.

한때 단약을 시도하기도 했다. 자취 생활을 접고 본가로 들어가 6개월 동안 일도 다 끊고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월 20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유흥업소에서 화려했던 생활을 누렸던 보라에게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SNS는 내재된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서서히 고개를 들도록 부추겼다. 사치스러웠던 시절이 그리워진 보라는 결국 돈을 더 벌기 위해 다니던 유흥업소로 돌아갔다.

본격적으로 마약에 중독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과거에 알고 지내던 지인이 구치소에서 나와 보라가 일하는 가게를 방문했다. 그 지인과 교제를 시작하면서 또 6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마약을 하게 됐다. 돈을 벌면 무조건 다 약을 샀다. 약에서 깨면 현실이 괴로워 또 약을 하며 잊었다. 월세, 생활비는 당연히 부족해졌고 끌어모을 수 있는 돈은 최대한 끌어모아 위태로운 생활을 지속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보라를 걱정하는 사람은 결국 어머니뿐이었다. 다시 집을 나간 딸의 소식을 수소문하다가 중독 사실을 알게 됐고, 고민 끝에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금단 현상이 나타나자 금세 폭력적으로 변했고, 정신을 잃어 응급실에 실려 갈 만큼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그렇게 6개월간 정신병동 감금 생활을 이어갔다.

"병원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약을 끓일 생각이 아예 없었어요. 어머니가 아시는 목사님이 병원에 와서 상담을 해주시면서 여기 시설로 옮기게 됐죠. 사실 처음에 너무 힘들어서 짐 싸고 집에 가려고 했어요. 근데 어떻게 살지 좀 뻔히 보이는 거예요. 저는 또 돈을 찾아 헤맬 거고, 해내면 또 약을 할 거고. 또 엄마가 절 보면서 불안해할 거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아직은 못 간다는 사실을 좀 받아들였어요."

보라는 시설에 들어오고 첫번째 약속을 지켜냈다. 바로 SNS 계정 영구 삭제였다. '계정 삭제' 버튼을 누르고 30일 동안은 로그인을 다시 하지 않아야 자동 탈퇴가 되는데, 그 기간을 견뎌냈다. 아직 불투명했지만 그는 일상을 이런 작은 성취들로 채우고 있었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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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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