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 첫 윤리강령 채택…법관 '호화여행' 논란 진화
- 23-11-14
대법관 9인 이해상충 해소해야…선물 수령·정치 참여 등 제약
민주당 '중요한 첫걸음' 평가…보수 법관은 '정치 외압' 의심
미국 대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법관 윤리 강령을 채택했다. 일부 대법관들이 재계 인사들로부터 값비싼 요트를 제공받는 등 '호화 여행'을 떠났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간 성역 취급을 받던 대법관들을 통제하는 방안이 마련됐다는 평가와 함께 윤리 강령 자체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법원 내부에선 민주당 정부가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을 길들이려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미 대법원은 13일(현지시간) 9페이지 분량의 대법관 윤리 강령을 공개했다. 윤리 강령에는 대법관 개인의 친분이 사법 판단과 공적 행보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강령에 따라 앞으로 대법관들은 공직 수행상 이해관계가 인정되는 외부 선물은 원칙적으로 수령할 수 없다. 전당 대회나 공직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연설도 제한된다. 아울러 대법원 직원 등 내부 자원을 비공식적인 활동에 동원하는 데도 제약이 따른다.
미국 사법체계의 정점에 있는 대법원은 다른 연방법원들과 달리 종신 고용이 보장돼 9명의 대법관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날 대법원은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대법관들이 지켜온 암묵적인 원칙들을 강령으로 성문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리 강령 발표에 앞서 대법관들의 이해상충 문제가 현지 언론에 잇달아 보도되면서 대법원에 대한 신뢰는 크게 추락한 상태다. 지난 4월 비영리 탐사매체 프로퍼블리카는 강경 보수 성향의 클라랜스 토마스 대법관이 텍사스 부동산 재벌 할란 크로우로부터 협찬을 받아 인도네시아에서 50만달러(약 6억원) 상당의 호화 요트여행을 즐긴 정황을 폭로했다.
프로퍼블리카는 또한 크로우가 토마스 대법관의 아내가 설립한 보수단체에 50만달러를 기부하고, 조카의 사립학교 등록금을 대납하는가 하면 어머니 소유의 부동산을 은밀하게 구매했다고 전했다.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도 2008년 알래스카로 낚시 여행을 떠날 당시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창립한 폴 싱어의 전용기를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9월 갤럽 여론조사에선 미국인 58%가 대법원 직무수행에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직무수행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1%에 그쳐 불과 30개월 만에 지지율이 17%p 하락했다.
이날 대법원이 윤리 강령을 마련했다는 소식에 의회에선 사법 개혁이 첫발을 디뎠다는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 소속 딕 더빈 상원 사법위원회 위원장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단계"라고 했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은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슈머 원내대표는 "대법관들이 윤리 강령을 무시할 경우 이를 강제로 집행할 방법이 없다"면서 견제 입법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토마스 대법관의 재판연구원이었던 캐리 세베리노는 "대법관들이 헌법을 수호한다는 이유로 민주당 상원 의원들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번에 채택된 윤리 강령으로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6대 3의 비율로 보수 우세인 대법원은 최근 소수인종 입학우대 및 낙태 합법화 정책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민주당과 마찰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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