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윤석호] 들숨
- 23-10-30
윤석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들숨
다시 밤이에요 내 귓속에 쌓인 당신의 이야기를 음표 하나 상하지 않게 발굴해서 기억 속으로 옮겨야 할 시간이에요
조금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당신은 자주 말끝을 짧게 끊곤 했어요 마음이 넘쳐 숨이 차서 그래요 하며 내 눈을 피하던 당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떠 있었어요
확대경에 불을 켜고 당신의 이야기를 복원하다 보면 당신의 호흡은 이야기의 끝에 가서 늘 조금씩 모자란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네요 말을 끝내고 버릇처럼 살짝 들이키는 당신의 들숨이 나를 당신 안으로 끌어들여요 내 귓속은 당신의 들숨으로 가득해요
앞을 살펴볼 필요가 없을 만큼 시간이 쌓인 다음에 누군가 우연히 짧은 호흡으로 말하면 나는 그 억양에 묻어 있는 느낌을 고증하느라 정작 당신을 놓치게 되겠지요
눈물이 나네요 우는 게 아니라 당신처럼 마음이 넘친 거예요 다짐을 하듯 또다시 그 시절 노래를 다 뒤져서 듣고 있어요
먼 훗날 열어 보게 될 내 기억의 어떤 칸에 당신의 들숨을 숨겨두고 싶어요 무심코 기억을 꺼내 볼 때 나도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들숨을 숨기던 당신의 목소리와
표정을 정하지 못한 당신의 얼굴
나는 밤마다 당신의 목소리를 복원해요
당신의 긴 날숨은 어떤 향기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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