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면적 절반…이-팔 분쟁 중심 '가자지구'는 어떤 곳[딥포커스]

하마스 총선 승리 후 이스라엘 봉쇄 계속…'세계 최대 감옥'

팔레 영토 회복 주장 하마스, 이스라엘 맞서 무력 저항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양측의 사망자가 1500명을 넘어선 가운데, '가자지구'에 살고 있던 수백만명의 주민들은 현재 완전히 고립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심에 있는 가자지구는 과연 어떤 곳일까.

9일(현지시간) 미국 NBC뉴스에 따르면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남서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길이 약 50km, 폭 5~8km에 걸쳐 가늘고 길게 뻗은 총면적 약 362㎢에 이르는 지역이다.

가자지구의 서쪽 끝은 시나이반도로 이어지며, 이 구역 내에 있는 최대의 도시 가자시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미국 수도 워싱턴DC와 비슷한 크기로 한국으로 치면 서울시 면적의 절반보다 조금 큰 수준에 불과한데, 이 좁은 땅에 약 230만 팔레스타인인이 모여 살고 있다. 이에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에 한 곳으로 꼽힌다. 

◇ 이스라엘, '자국민 보호' 가자지구 봉쇄 시작

가자지구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웨스트뱅크)와 함께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점령한 뒤 이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세웠다. 이후 오슬로 평화협정을 거쳐 1994년 이래 가자지구는 공식적인 팔레스타인 자치구로 인정돼 왔다.

2005년에는 평화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을 포기하고 자국민과 군대를 가자지구에서 철수시켰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철수 후에도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정착촌 건설을 이어왔다.

불법 점령지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건설은 계속됐다.

이듬해 1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가자지구를 둘러싼 갈등은 본격 재점화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2007년부터 장벽을 세우고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이집트 역시 남쪽 라파와 맞닿은 국경을 통제해 가자지구는 '세계 최대의 감옥'으로도 불려 왔다.

국제적십자위원회 등이 이스라엘의 이 같은 봉쇄를 제네바 협약 위반이라고 비판을 이어갔지만, 이스라엘은 주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생필품 반입도 통제하는 등 봉쇄를 계속해 왔다.

하마스가 통합정부를 구성했던 파타와 내전을 벌여 가자지구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도 이스라엘은 2008년 공격으로 약 1500명을 죽인 것을 포함, 이곳에선 양측의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8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의 보복 공격으로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다. 2023.10.9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8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의 보복 공격으로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다. 2023.10.9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 하마스, 이스라엘 존재 부정하며 영토 회복 주장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HAMAS)는 팔레스타인 영토의 양대 정당 중 하나로,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약자다. 1987년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압제에 저항하는 대대적 봉기(1차 인티파다)를 벌인 뒤 창설됐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에 대해 무력 저항을 주장한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등은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사는 수백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해 교육과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마스는 이같은 무력 투쟁은 이스라엘에 빼앗긴 팔레스타인 영토를 되찾기 위한 '자유 투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마스의 이같은 무력 사용에 대해선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 '중동의 화약고' 이·팔 분쟁 역사는 언제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본격화된 뒤 현재까지 수십 년 간 이어지고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분쟁으로 꼽힌다.

이 오래된 분쟁의 역사는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건너오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땅을 놓고 싸우면서부터 시작됐다.

유대인들은 서기 70년 로마군에 패해 로마 제국의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됐고, 이때부터 디아스포라가 본격 시작됐다. 이들은 유럽에서 등장한 시오니즘(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19세기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서방 열강이 처음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공식 지지한 벨푸어 선언과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은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를 급증시켰다. 이어, 영국과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에 힘입어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이스라엘이 세워지자 팔레스타인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연합군을 결성해 1973년까지 4차례 전쟁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고, 영토를 크게 확대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주민 수백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의 민간인 구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이 가해지면서 건물이 파괴되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3.10.9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의 민간인 구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이 가해지면서 건물이 파괴되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3.10.9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특히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전쟁으로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요르단강 서안 지역을 불법 점령했다. 2006년 가자지구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고 의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자 자국민 보호를 내세우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엄격히 봉쇄하고 철저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명시된 '두개 국가 해법'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긴 분쟁에 외교적 노력도 수차례 이어졌음지만 팔레스타인 난민 처리 문제,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착촌 문제, 예루살렘 수도 공유 문제 등 양측의 분쟁은 계속돼왔다. 

이 가운데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대규모 기습 공격이 벌어졌고 사망자는 현재까지 1500명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양측의 부상자를 합하면 현재까지 6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스라엘은 30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해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는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봉쇄를 선언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re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