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엄경제] 공간

엄경제(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공간

처음
달빛이 닿은 곳엔
표정이 있었다 
청죽의 기개도 있을 법했다
몇 되지 않은 곁가지도 마땅찮아 하늘만 올려다보았고
곧게 깔린 긴 그림자는 나름의 신분증을 대신했다

더 높이 찌르기 위해선 흔들리지 않을 바닥이 필요했고 
솟는 만큼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표정 없는 얼굴로 배경을 선택한 바닥은
평지의 의미를 알만한 때쯤
평평하면 그림자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신분증을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틀이 만들어져 간다
평평한 것은 하늘이 필요했고 솟은 것은 깊은 뿌리를 내릴 단단하고 넓은 바닥이 필요했다 

순탄하기 짝이 없던 변함없는 삶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그
수평과 수직은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배경과 야망 
갈등과 양보가 줄다리길 하고
삶은 또 다른 기록을 만들어 간다 
또렷했던 개성은 흐물거리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허리를 굽히기 시작했다

초점을 잃은 넋은 매혹에 길들여지며 가던 길을 잃고
마음을 곧게 써야 한다던 교과서적인 판단들은
반대편으로 길게 뿌리를 내리며 
넓은 들판에 펼쳐진 소신을 잃은 갈대처럼 
꿈과 야망은 혼재되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정의란 깃발 아래 
지금과 다르면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담벼락을 치며 
각자의 성을 쌓으면서
역사의 강은 예정에 없던 굴곡을 타고 흐르며
다시 그 위에 새로운 기록을 남긴다

반증에 반증을 더해 가는 시어들도 
방향을 잃은 그림자처럼 뿌옇게
안개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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