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유세진] 부가부
- 22-12-12
유세진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부가부
무슨 일이지?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주고받는 한 소셜 네트워크에서 ‘Be careful’이란 제목이 1위로 올랐다. 걱정 반 호기심 반에 파란색 링크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줄줄이 달린 댓글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내용인즉슨, 요즘 애들 사이에 뜨는 게임이 있는데 그걸 통해 마약 거래가 이루어졌고 자기 아들도 희생양이 됐다며 당장 게임기를 버리라는 어느 아빠의 글이었다. 이 원글 아래, 비디오 게임은 백해무익하다며 동의하는 댓글들과 게임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반대하는 대댓글들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며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게임이라면 얼마 전 아들도 다운받은 건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호기심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심란한 마음으로 다음 글들을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탈선의 시작은 비디오 게임이니 절대 시키지 말라는 글을 읽으면 당장 게임기를 뺏어야 할 것 같다가도, 온라인으로 낯선 이들과 연락이 쉬워진 게 원인이란 글을 읽으면 인터넷을 끊을까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각각의 댓글을 읽을 때마다 내 생각은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다 어느 댓글에서 피식 코웃음이 터졌다. ‘그저 집 밖을 나가 학교에 가는 게 가장 위험한 행동일걸.’ 이 냉소적인 글은 지금까지 복잡했던 내 심정을 다 부질없게 만들었다.
이 이슈를 가족과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도 이 아빠처럼 막무가내로 게임기를 압수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또 아이들을 불신하는 잔소리꾼 엄마로 비칠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줏대 없는 내 수준이 들통날까 주저했던 거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이 아빠는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올렸을까 궁금했다. 가족 간에도 나누기 쉽지 않은 뜨거운 감자를 왜 불특정 다수가 득실거리는 SNS에 던졌을까. 진짜 다른 부모들에게 조언하려는 순수한 의도였을까. 아니면 자기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즉흥적인 화풀이였을까.
게임을 둘러싼 페어런팅 논쟁은 결국 산으로 갔다. 정확한 정보 없이 감정적으로 특정 게임회사를 매도 하는 댓글에, 이 지역에 사는 수많은 IT 종사자들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들이대며 반론을 제시했다. 결국 며칠 뒤, 원글과 그 밑에 달린 모든 댓글이 지워졌다. 아무런 결론 없이 공중분해 된 상황이, 마치 어떤 양육방식이 맞을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포기해버린 내 처지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글을 캡쳐해 둘걸. 뚜렷한 주장이 있는 이들의 논쟁이 어쩌면 내 어정쩡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마음에 온 가족이 탄 차 안에서 그간의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아직 뭣 모르는 중학생 아들은 이 재밌는 게임을 못 하게 될까 봐 아는 친구들이랑만 한다고 변명하기 바빴다. 뭐 좀 안다 싶은 고등학생 딸은 논쟁이 있었던 그 SNS에서도 맘만 먹으면 마약 거래가 가능한 거 아니냐며 어른들의 아이러니를 비웃었다.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확고한 주장이 있었다. 어른들의 기우와 무지까지 되레 다 파악하면서 말이다. 남편은 앞선 내 생각과는 달리, 자기 의견을 당당히 내세우는 아이들의 소리를 잠잠히 경청했다. 지금은 틴에이저 아이들에게 일장 연설할 때가 아닌 것쯤은 남편도 이미 배운 모양이다. 뜨거운 감자를 서로에게 토스하기보다, 각자 자기 나름의 레시피로 멋지게 요리해낼 줄 아는 가족에게 새삼 놀랐다.
도통 답을 찾지 못하는 처지를 솔직하게 나눈 것도 나만의 요리법이었지 싶다. 어쩌면 엄마의 난처함을 도와주려고 아이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꺼냈을 수도 있다. 나와 아이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남편도 말수를 줄였을지도 모른다. 염려와 두려움에 계속 묶여 있었다면 내 생각 안에 갇혀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가족을 의심했을 거다. 이번 기회를 통해, 최선의 페어런팅은 솔직한 소통에서 시작되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문득 원글 아빠가 생각났다. 혹시 그도 뭔가를 오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떤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을까. 아들과 이루지 못한 소통을 온라인 공간에서는 가능할 거로 생각했던 걸까.
논쟁이 결론 없이 사라진 게 아쉬웠는지 새로운 글 하나가 올라왔다. 잘 아는 이의 글이었다. 문제의 비디오 게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기기들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서도, 또 그것을 사용하는 아이들을 돌볼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까지 조리 있게 잘 쓴 글이다. 그래서 반대하는 댓글도 악플도 달리지 않았다. 그런데 짧은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세대마다 그들만의 부가부(Bugaboo)가 있는 게 참 웃기지?’ 그저 웃기지만은 않은 뼈 때리는 팩트다.
구세대의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 새로운 세대는 늘 홍역을 치른다. 알고 보면 별거 아닌 일을 괜한 걱정거리로 둔갑시킨다.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 망태 할아버지가 잡으러 온다며 어린아이들을 겁주던 어른들이, 오히려 도깨비장난 같은 새로운 형식의 놀이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는 꼴이 웃기면서도 슬프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시애틀영사관, 시애틀국제영화제 특별후원
- KWA 대한부인회 올해 장학생 선발한다
- 한국학교 서북미협의회 합창대회서 코가한국학교 ‘대상’(+영상,화보)
- 조기승 회장 모친상속 14대 서북미연합회 힘찬 출발(+화보)
- 104세 생일 맞은 오리건주 최장수 신명순 할머니 생일잔치 열려
- [시애틀 수필-문해성] 글월 문, 바다 해, 별 성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김철훈 목사 소고(小考-2)
- [서북미 좋은 시-이매자] 아버지의 등
- 워싱턴주 한인교계 큰별 박영희 목사 별세
- [부고] 조기승 서북미연합회 회장 모친상
- [공고] 제 35대 워싱턴주 한인상공회의소 임시이사회 및 총회
- 워싱턴주 한인그로서리협회(KAGRO) 회원 권익과 안전 위해 최선
- “한인 여러분, 핀테크를 통한 재정관리ㆍ투자 알려드립니다”
- 시애틀 한인마켓 주말세일정보(5월 3일~ 5월 6일, 5월 9일)
- 샘 심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수치심에서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 시애틀 롯데호텔 '미국 최고 호텔 7위' 올라
- “샛별문화원으로 한국문화 체험하러 왔어요”
- "시애틀 한인여러분은 하루에 몇마일 운전하시나요?"
- 한국 아이돌 엔하이픈 시애틀서 멋진 시구에 이치로도 만났다(영상)
- 페더럴웨이 청소년심포니 오케스트라 봄 연주회
- 린우드 베다니교회 이번 금~토 파킹장 세일
시애틀 뉴스
- 보잉 737기 또?…세네갈서 여객기 활주로 이탈[영상]
- 시애틀시내 전기차 충전 이렇게 이용하면 된다
- UW 땅이 인디언과 관련돼 있다고 교수와 학교측 법정싸움
- 보잉 "또"..이스탄불서 767 앞바퀴 안내려와 동체착륙
- UW 시위대 요구에도 불구하고 "보잉과 관계단절 안할 것”
- 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CEO "영업부진? 답은 결국 매장에 있다"
- FAA "보잉 787드림라이너 기록 위조 등 조사중"
- 시애틀지역 집값 12% 올랐다
- 시애틀서 주택 리스팅 가장 좋은 시기는? 지역마다 다르다
- 시애틀 이번 주말 처음으로 80도 돌파한다
- <속보> I-90서 탈출했던 얼룩말 1주일만에 발견됐다
- 시애틀 적자예산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나
- 시애틀 경찰관들 연봉 엄청 오른다
뉴스포커스
- 정부 "외국의사, 당장 투입 안해…'의대증원' 자료 충실히 제출"
- 매출차 고작 '145억'…편의점 투톱 GS25·CU 경쟁 더 치열해진다
- 전국 아파트 입주율 63.4%…미입주 사유, '세입자 미확보' 3개월째 ↑
- 尹 '채 특검' 거부권 시사에…민주 초선들 '천막농성' 나선다
- '역대급 하자' 오룡 힐스테이트 논란에…현대엔지니어링 "깊은 사과"
- 기재차관 "배추·양배추·김 할당관세 신규 적용…김 양식장 개발"
- 아파트 24층서 생후 11개월 조카 던진 고모…母 요리하는 사이 비극
- 민주 "정부, '라인 사태' 수수방관 굴욕외교…외통위·정무위 긴급 소집"
- 온라인 싸움이 현실판 살인으로…50대 유튜버들 현피 뜨다 사망
- 14조8000억 투자 '밀물'…기업들, 앞다퉈 '새만금 산단'에 새 둥지
- 尹 대통령, 김건희·채상병 특검 사실상 거부…檢·공수처에 쏠리는 눈
- 윤 대통령 "제 아내 처신 사과"…사전 독회 때 없던 발언 '진심' 드러내
- 대통령실, 日 네이버 라인 탈취에 "철저하게 네이버 이익 위할 것"
- '여친 살해' 의대생 "범행 뒤 옷 갈아입었다"…계획범죄 정황 추가
- 이재명 대표, 미뤄온 치료 위해 입원…윤 대통령 기자회견엔 잠잠
- 日서 韓유학생, 여중생 성추행 혐의로 체포…"고의 아니었다" 부인